다섯 번째 궁금증

성경, 어떻게 읽어야 하나요?

“학살을 명령한 신이 사랑이라고?” “어류로 가득한 책 아니야?” 가장 난감한 구절부터 보겠습니다.

폭력 본문, 복음서의 차이, 노예제, 번역 오류를 먼저 묻겠습니다. 가장 난감했던 질문을 누르면 피하지 않고 맥락과 핵심 답을 바로 보여 드려요.

파란 꽃밭에서 함께 질문을 나누는 어린 양들을 그린 수채화

먼저 약속해요

  • 한 구절을 떼어 다른 사람을 겁주거나 침묵시키는 무기로 쓰지 않아요.
  • 시, 비유, 역사, 법, 편지와 묵시문학을 모두 같은 방식으로 읽지 않아요.
  • 어렵고 폭력적으로 보이는 본문을 숨기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와 성경 전체의 빛 안에서 질문해요.
  • “이 본문은 더 공부해야 해.”라고 말하는 것은 성경을 무시하는 일이 아니에요.

오늘의 한 문장 성경을 믿는다는 것은 모든 문장을 납작하게 읽는 일이 아니라, 인간의 말로 다가오신 하느님의 말씀을 그리스도와 교회 안에서 정직하게 듣는 일이에요.

1. 사람들이 쓴 책을 왜 ‘하느님 말씀’이라고 하나요?

여러 시대의 책들이 한 강처럼 흐르는 성경 도서관과 어린 양 수채화

질문:하느님 말씀이라면 하느님이 직접 한 번에 써 주신 것 아닌가요?”

비유 — 여러 샘이 모인 한 강

산의 여러 샘과 시냇물이 오랜 길을 지나 한 강을 이루어요. 물길마다 풍경은 다르지만 같은 바다를 향해 흘러요. 성경도 여러 시대와 저자의 목소리가 구원의 한 이야기 안에 모여 있어요.

교회의 답: 성경은 수세기에 걸쳐 기록된 여러 책의 모음이에요. 하느님께서는 인간 저자들을 기계처럼 받아쓰기시키지 않고 그들의 능력, 문화와 표현을 참으로 사용하셨어요. 그래서 하느님은 성경의 저자이시고, 성경을 쓴 사람들도 참된 저자예요. 교회는 사도적 전승 안에서 어떤 책들이 영감 받은 정경인지 분별해 받아들였어요.

다시 물으면: “사람이 썼다면 그냥 인간 책 아닌가요?” — 예수님이 참하느님이시며 참사람이신 것처럼, 비유가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하느님의 말씀이 참된 인간 언어로 다가왔음을 생각할 수 있어요. 인간적 특징은 영감을 없애는 결함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택하신 방식이에요.

한 문장 답: “성경은 하늘에서 떨어진 받아쓰기 책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여러 참된 인간 저자를 통해 주신 구원의 책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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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불편한 구절만 비유라고 돌리는 건 선택적 해석 아닌가요?

시와 역사와 편지가 꽂힌 책장을 살펴보는 어린 양 수채화

질문: “‘내 오른손을 잘라 버려라.’도 그대로 해야 성경을 믿는 건가요?”

비유 — 도서관의 서로 다른 책장

도서관의 시집, 뉴스, 법전, 편지와 우화를 같은 규칙으로 읽으면 뜻을 놓쳐요. “마음이 얼었다.”는 시를 의학 보고서처럼 읽지 않듯이 문학 양식을 살펴야 해요.

교회의 답: 성경의 문자적 의미는 저자가 실제로 무엇을 표현하려 했는지 찾는 뜻이지, 모든 표현을 글자 표면대로 해석한다는 뜻이 아니에요. 역사 서술, 시, 지혜문학, 비유, 예언과 묵시문학의 방식이 달라요. 교회는 저자의 시대와 문화, 문학 양식, 성경 전체의 일치, 살아 있는 전승과 신앙의 일치를 함께 살피라고 가르쳐요.

다시 물으면: “그러면 마음대로 상징이라고 하면 되나요?” — 아니에요. 장르와 문맥, 원어와 역사적 근거를 살펴야 하고 공동체의 오랜 해석과 교도권의 지도를 들어야 해요. 문자주의를 피하는 것과 뜻을 마음대로 만드는 것은 달라요.

한 문장 답: “성경의 참뜻을 존중하려면 모든 문장을 같은 방식으로 읽지 말고, 저자의 뜻과 장르와 맥락을 살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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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창세기는 현대 과학과 이미 틀린 책 아닌가요?

창세기를 펼치고 별과 지구를 경이롭게 바라보는 어린 양 수채화

질문: “우주와 생명의 과학을 받아들이면 창조 신앙을 버리는 건가요?”

비유 — 집의 설계와 가족의 이야기

설계도는 집이 어떤 재료와 구조로 지어졌는지 보여 주고, 가족 이야기는 그 집을 왜 사랑하고 어떻게 살아갈지 알려 줘요. 둘은 같은 질문에 답하지 않지만 한 집을 더 깊이 이해하게 해요.

교회의 답: 창세기 1–3장은 하느님이 모든 것의 창조주이시고 창조가 선하며 인간이 하느님의 모습으로 존엄하고 죄가 관계를 깨뜨렸다는 근본 진리를 가르쳐요. 고대의 상징적이고 문학적인 표현을 현대 자연과학 논문처럼 읽으라고 쓰인 책이 아니에요. 우주의 나이와 생명의 과정을 연구하는 과학은 창조 신앙과 원칙적으로 충돌하지 않아요.

다시 물으면: “그럼 창세기는 사실이 아닌가요?” — ‘사실’이 과학 수치만 뜻하지 않아요. 비유와 시도 인간과 세계에 관한 참된 진리를 전할 수 있어요. 무엇을 주장하는 본문인지 정확히 묻는 것이 성경을 가볍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더 존중하는 일이에요.

한 문장 답: “창세기는 과학 교과서가 아니라 누가 세상을 창조했고 인간이 누구인지 가르쳐. 과학은 창조 세계가 어떻게 펼쳐졌는지 연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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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복음서끼리 말이 다른데 어떻게 오류가 없다고 하나요?

서로 다른 창으로 하나의 정원을 바라보는 복음서 퍼즐 수채화

질문: “같은 사건을 조금 다르게 쓰면 누군가는 거짓말한 것 아닌가요?”

비유 — 한 정원을 보는 네 창

같은 정원을 네 창에서 보면 나무와 길의 위치가 조금씩 다르게 보여요. 서로 다른 시선은 정원이 네 개라는 뜻도, 아무 정원도 없다는 뜻도 아니에요.

교회의 답: 복음서 저자들은 사도적 증언을 바탕으로 실제 공동체의 필요와 신학적 목적에 맞게 자료를 선택하고 배열했어요. 세부 순서, 표현, 강조점이 다른 것을 현대 녹화 영상의 복사본처럼 맞추려 하면 고대 전기의 방식을 놓쳐요. 차이는 질문을 요구하지만 곧 거짓이라는 결론도 아니며, 네 복음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참되게 증언해요.

다시 물으면: “어려운 차이는 억지로 맞춰야 하나요?” — 가능한 역사적 설명을 연구할 수 있지만 모든 차이를 억지로 하나의 장면으로 합칠 필요는 없어요. 각 저자가 무엇을 가르치려는지 먼저 듣고, 풀리지 않는 문제는 정직하게 남겨 둘 수 있어요.

한 문장 답: “복음서의 차이는 네 증인이 각기 선택하고 강조한 방식에서 생겨. 차이를 숨기지 않고 각 목소리로 한 분 예수님을 더 깊이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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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학살을 명령한 하느님을 어떻게 사랑이라고 부르나요?

어두운 옛 골짜기에서 십자가의 빛을 따라 폭력 본문을 읽는 어린 양 수채화

질문: “전쟁과 죽이라는 명령이 나오는데 어떻게 사랑하느님 말씀인가요?”

비유 — 어두운 골짜기를 지나 완성되는 길

긴 새벽길의 앞부분은 어둡고 표지판도 거칠게 보일 수 있어요. 목적지의 밝은 빛에서 뒤돌아보면 길이 어디로 향했고 무엇이 아직 미완성이었는지 더 분명해져요.

교회의 답: 폭력 본문은 실제로 어렵고, 피해자의 고통을 가볍게 설명해서는 안 돼요. 성경은 폭력적인 고대 세계 속에서 하느님 백성이 점차 교육받아 온 역사도 숨기지 않아요. 가톨릭은 구약을 버리지 않지만 예수 그리스도, 특히 원수를 사랑하고 십자가에서 자신을 내어 주신 분을 성경 전체의 중심과 완성으로 읽어요. 고대 전쟁 표현의 문학적 과장과 역사적 맥락도 연구해야 해요.

다시 물으면: “그 본문으로 오늘 폭력을 정당화할 수 있나요?” — 안 돼요. 성경 구절을 떼어 집단 학살, 인종주의, 혐오나 개인 폭력을 명령하는 것으로 적용하는 것은 복음과 성경 전체의 일치에 어긋나요.

한 문장 답: “폭력 본문은 숨기지 않고 역사와 장르를 연구하되, 원수까지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빛에서 읽어야 해. 오늘의 폭력을 정당화할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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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구약의 잔인한 신과 예수님의 아버지는 사실 다른 신 아닌가요?

구약의 새벽과 신약의 아침을 한 태양이 비추는 수채화

질문: “구약은 심판, 신약은 사랑이니 하느님이 바뀐 것 아닌가요?”

비유 — 새벽부터 아침까지 비추는 한 태양

새벽에는 사물의 윤곽만 보이고 아침이 오면 색과 모습이 분명해져요. 태양이 다른 태양으로 바뀐 것이 아니라 같은 빛이 더 충만히 드러난 거예요.

교회의 답: 구약과 신약의 하느님은 한 분이에요. 구약에도 창조와 자비, 계약과 용서가 가득하고 신약에도 죄와 심판에 대한 엄중한 경고가 있어요. 신약은 구약을 폐기하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하고 깊은 뜻을 밝혀요. 두 계약은 서로를 비추며 하나의 구원 역사를 이뤄요.

다시 물으면: “그럼 구약은 낡아서 읽을 필요 없나요?” — 아니에요. 예수님과 초기 교회의 성경이 구약이었고, 구약 없이는 창조·계약·탈출·예언과 예수님의 사명을 충분히 이해할 수 없어요.

한 문장 답: “구약과 신약에는 한 분 하느님이 계셔. 그리스도 안에서 같은 자비와 정의의 계획이 충만히 드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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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노예제와 여성차별을 적어 둔 성경이 정말 도덕의 기준인가요?

가시덤불 같은 어려운 본문을 풀며 억눌린 이를 보호하는 어린 양 수채화

질문: “성경에 기록되어 있으면 하느님이 그 제도를 옳다고 하신 것 아닌가요?”

비유 — 상처 난 사회를 치료하는 긴 과정

의사가 환자의 현재 상처를 기록했다고 상처를 좋다고 칭찬한 것은 아니에요. 즉시 가능한 치료와 완전한 건강의 목표를 구별하며 회복을 이끌어요.

교회의 답: 성경은 고대 사회의 가부장제, 노예제와 불평등 속에서 기록되어 그 흔적을 담고 있어요. 어떤 법은 당시 폭력을 제한하지만 오늘의 완전한 도덕 기준을 그대로 표현하지는 않아요. 성경 전체는 모든 인간이 하느님의 모습이고 그리스도 안에서 한 존엄을 지니며, 사랑과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방향을 보여 줘요. 과거의 본문을 오늘의 착취와 차별을 정당화하는 데 쓰면 안 돼요.

다시 물으면: “교회도 그런 구절을 악용했잖아요?” — 맞아요. 그리스도인들이 노예제와 여성 억압을 정당화한 역사를 인정하고 회개해야 해요. 동시에 많은 그리스도인이 성경의 인간 존엄과 해방의 가르침으로 그것에 맞선 역사도 함께 보되, 잘못을 지우는 핑계로 쓰지 않아요.

한 문장 답: “성경이 고대의 불의한 제도를 기록한다고 모두 승인하는 것은 아니야. 모든 사람의 존엄과 그리스도의 사랑이라는 완성의 빛에서 읽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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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수천 년 동안 베끼고 번역했는데 원문이 남아 있다고 믿나요?

오래된 여러 사본을 비교하는 어린 양 학자들의 수채화

질문: “번역을 거듭했으니 원래 뜻이 전화놀이처럼 사라졌겠죠?”

비유 — 오래된 여러 사본을 나란히 비교하기

한 사람이 전한 소문만 듣는 전화놀이와 달리, 연구자는 여러 시대와 지역의 수많은 사본을 나란히 비교해 더 오래된 읽기를 찾아요. 차이가 보이면 숨기지 않고 각주에 기록해요.

교회의 답: 현대 성경 번역은 보통 다른 번역을 계속 베끼는 것이 아니라 히브리어·아람어·그리스어 원문 전통을 연구해 만들어요. 손으로 베끼던 사본 사이에 철자나 어순 같은 차이는 있지만 많은 사본을 비교하는 본문비평으로 상당 부분 확인할 수 있고, 핵심 그리스도교 신앙이 한 불확실한 글자에 달려 있지 않아요. 번역마다 목표가 달라 표현이 다를 수 있어요.

다시 물으면: “어느 번역만 완벽한가요?” — 어떤 번역도 모든 뉘앙스를 혼자 담지는 못해요. 교회가 전례와 교육용으로 승인한 번역을 중심에 두고, 어려운 곳은 다른 번역과 주석을 비교하면 좋아요.

한 문장 답: “성경은 번역의 전화놀이가 아니야. 학자들은 오래된 원어 사본들을 비교하고 차이를 공개하며 충실한 번역을 계속 다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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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예언과 묵시록은 종말 공포를 파는 암호책 아닌가요?

예언서를 점괘가 아니라 어둠을 밝히는 등불로 읽는 어린 양 수채화

질문: “성경 숫자를 계산하면 세상 끝나는 날과 다음 사건을 알 수 있나요?”

비유 — 위험을 비추고 길을 돌리는 등불

등대의 불빛은 배가 몇 초 뒤 어느 파도에 닿을지 점치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알리고 안전한 방향으로 돌아서게 해요. 예언도 호기심을 채우기보다 회개와 희망으로 부르는 말씀이에요.

교회의 답: 성경의 예언자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현재의 우상숭배와 불의를 드러내고 계약에 돌아오라고 외쳤어요. 미래에 관한 약속도 있지만 점술처럼 날짜표를 제공하지 않아요. 묵시문학의 짐승·숫자·우주적 이미지는 박해받는 신자에게 악이 결국 패배하고 하느님이 승리하신다는 희망을 전하는 상징 언어예요.

다시 물으면: “누가 특정 날짜에 종말이 온다며 돈이나 피난을 요구하면요?” — 예수님은 그 날과 시간을 아무도 모른다고 하셨어요. 공포로 돈, 가족과의 단절, 절대복종을 요구하면 믿을 만한 어른과 관계 기관에 알리고 거리를 두세요.

한 문장 답: “성경의 예언은 점괘나 종말 날짜 암호가 아니라, 불의에서 돌아서고 하느님의 승리를 희망하라는 말씀의 등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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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가톨릭은 사람들이 성경을 직접 읽는 걸 막아 온 것 아닌가요?

교회 공동체가 함께 펼친 성경에서 말씀을 듣는 어린 양들 수채화

질문: “가톨릭은 성경보다 전통을 앞세워 사람들이 성경을 못 읽게 한다면서요?”

비유 — 가족이 함께 읽는 소중한 편지

가족의 오래된 편지를 혼자 읽을 수도 있지만, 당시 상황을 아는 가족과 함께 읽으면 낯선 표현과 이름을 더 잘 이해해요. 함께 읽는다고 편지를 감추는 것이 아니에요.

교회의 답: 교회는 성경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공경하고 모든 신자가 자주 읽도록 권해요. 미사 전례에서도 성경을 넉넉히 선포해요. 역사에는 번역과 해석을 둘러싼 제한과 잘못된 대응도 있었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모든 신자가 적절한 번역과 설명으로 성경에 쉽게 다가가야 한다고 분명히 가르쳤어요.

다시 물으면: “왜 교회의 설명이 필요한가요?” — 개인 독서를 막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경이 교회의 신앙 안에서 생겨나고 전해졌으며, 내 취향만으로 왜곡하지 않도록 공동체의 기억과 도움을 받기 위해서예요.

한 문장 답: “가톨릭 교회는 모든 신자가 성경을 자주 읽고 기도하도록 권해. 개인 독서와 공동체의 해석은 서로를 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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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성경이면 충분한데 전승과 교황을 끼워 넣는 이유가 뭔가요?

한 구절과 앞뒤 맥락을 큰 지도에서 함께 찾는 어린 양 수채화

질문: “성경에 글자로 없으면 믿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비유 — 악보와 살아 있는 연주 공동체

악보는 음악을 충실히 전하는 기준이지만, 악보를 만들고 보존하고 연주법을 전해 온 공동체와 떨어져 혼자 생긴 것은 아니에요. 연주 공동체도 악보를 마음대로 바꿀 수 없어요.

교회의 답: 복음은 신약 책들이 모두 쓰이기 전부터 사도들의 설교와 공동체의 삶으로 전해졌어요. 성경과 성전은 서로 다른 두 계시가 아니라 한 하느님 말씀의 긴밀히 연결된 전달 방식이며, 교도권은 그 말씀 위에 군림하지 않고 섬겨야 해요. 교회는 성경을 만들었다는 뜻으로 내용을 창작한 것이 아니라 어떤 문서가 사도적 신앙의 정경인지 성령 안에서 분별했어요.

다시 물으면: “그러면 교회가 성경과 반대되는 것을 만들 수 있나요?” — 아니에요. 참된 전승과 가르침은 성경과 모순될 수 없고, 성경·성전·교도권은 서로 연결되어 하느님의 한 계시를 섬겨요. 개인 관습이나 지도자의 의견을 사도적 전승과 혼동하지 않아야 해요.

한 문장 답: “성경과 사도적 전승은 한 하느님 말씀을 함께 전하고, 교회는 그 말씀의 주인이 아니라 듣고 지키고 설명하는 종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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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아무 데나 펼쳐 답을 찾는 건 성경을 점책처럼 쓰는 것 아닌가요?

마법 쪽지 대신 성경 나침반을 들고 사랑의 길을 걷는 어린 양 수채화

질문: “답이 필요할 때 눈 감고 펼친 구절이 하느님의 직접 명령인가요?”

비유 — 한 조각이 아니라 전체 지도를 보기

지도에서 우연히 손가락이 닿은 한 지점만 보고 여행 방향을 정하면 낭떠러지나 막힌 길을 놓칠 수 있어요. 현재 위치, 목적지와 전체 길을 함께 봐야 해요.

교회의 답: 성경 한 구절이 마음을 비추는 은총이 될 수 있지만, 우연한 펼치기를 점술이나 자동 명령처럼 사용하면 본뜻을 왜곡할 위험이 커요. 앞뒤 문맥, 책 전체, 성경 전체와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읽고 기도하며, 중요한 결정은 이성적 사실·양심·좋은 조언과 책임도 함께 살펴야 해요.

다시 물으면: “누군가 구절 하나로 저에게 복종하라고 하면요?” — 문맥을 함께 확인하고, 두려움·비밀·돈·신체 접촉을 강요한다면 거절하고 믿을 만한 어른에게 알리세요. 성경은 학대자를 보호하는 무기가 아니에요.

한 문장 답: “성경은 마법 쪽지나 점괘가 아니라 삶을 비추는 하느님 말씀이야. 한 구절을 전체 맥락과 교회의 지혜 안에서 읽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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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관한 반박을 들을 때 이렇게 대화해요

  1. 본문을 함께 펼쳐요. 기억에 의존하지 말고 앞뒤 문맥과 번역을 확인해요.
  2. 장르를 물어요. 시인지, 역사인지, 비유인지, 묵시문학인지 살펴요.
  3. 어려움을 숨기지 않아요. 폭력, 차별과 사본 차이는 믿을 만한 주석과 연구로 정직하게 다뤄요.
  4. 그리스도를 중심에 둬요. 예수님의 삶·죽음·부활과 사랑의 계명이 성경 전체를 비춰요.
  5. 구절을 무기로 쓰지 않아요. 논쟁에서 이기기보다 진리를 찾고 약한 이를 보호해요.

30초 답변 “성경은 하느님의 말씀이지만 여러 시대의 참된 인간 저자들이 다양한 장르로 쓴 책들의 모음이야. 그래서 모든 문장을 똑같이 문자적으로 읽지 않고 역사와 문맥, 성경 전체와 교회의 전승을 함께 살펴. 어려운 본문을 숨기지 않되, 원수를 사랑하고 자신을 내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빛에서 읽어야 해.”

부모와 교리교사를 위한 안내

  • 아이가 폭력 본문을 물으면 “좋은 질문이야.”라고 먼저 말하고 두려움을 충분히 들으세요.
  • 어린이용 성경의 요약과 성경 본문 자체를 구별해 주세요.
  • 한 구절 암기와 함께 앞뒤 단락, 장르, 책의 큰 흐름을 찾는 습관을 길러 주세요.
  • 종말 날짜, 비밀 지식, 돈과 복종을 요구하는 해석을 경계하도록 가르치세요.
  • 어려운 본문은 승인된 성경 주석, 교리서와 성서학자의 도움을 받으세요.

공식 자료로 더 읽기

이 자료는 어린이·청소년과 대화를 시작하기 위한 교리교육 보조 자료예요. 성경 구절로 두려움, 학대, 돈, 비밀이나 절대복종을 강요받으면 혼자 해결하지 말고 보호자와 믿을 만한 사목자, 지역 관계 기관에 도움을 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