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읽는 법 · 질문 5

학살을 명령한 하느님을 어떻게 사랑이라고 부르나요?

어두운 옛 골짜기에서 십자가의 빛을 따라 폭력 본문을 읽는 어린 양 수채화

질문: “전쟁과 죽이라는 명령이 나오는데 어떻게 사랑의 하느님 말씀인가요?”

교회의 답: 일부 본문은 단순히 전쟁을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하느님께서 진멸을 명령하신 것처럼 말해요. 그 문장을 못 본 척하거나 “사실은 전혀 폭력이 아니었다.”고 쉽게 바꾸면 정직한 답이 아니에요. 고대 전쟁 기록에는 전면 승리를 말하는 과장된 관용 표현이 있었고, 본문에는 폭력적인 시대를 살던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뜻을 이해하고 표현한 역사적 한계도 담겨 있어요. 가톨릭은 인간 저자의 모든 도덕 인식이 처음부터 완성됐다고 보지 않고, 원수를 사랑하며 자신이 죽음을 짊어지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가 절정에 이르렀다고 읽어요. 그렇다고 각 사건에서 역사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고 사람들이 하느님의 명령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우리가 모두 재구성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 모르는 부분을 인정하면서도,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일이 선해지지는 않으며 이런 본문을 오늘의 폭력 명령으로 사용할 수 없다고 분명히 말해야 해요.

다시 물으면: “그 본문으로 오늘 폭력을 정당화할 수 있나요?” — 안 돼요. 성경 구절을 떼어 집단 학살, 인종주의, 혐오나 개인 폭력을 명령하는 것으로 적용하는 것은 복음과 성경 전체의 일치에 어긋나요.

한 문장 답: “폭력 본문은 숨기지 않고 역사와 장르를 연구하되, 원수까지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빛에서 읽어야 해. 오늘의 폭력을 정당화할 수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