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찾아가는 기적 · 질문 6

과달루페의 틸마는 사람이 그린 그림인가요?

별이 박힌 청록색 망토를 두르고 두 손을 모은 과달루페 성모의 틸마 사진

질문: “16세기에 인디오 화가가 그렸다는 기록이 있다던데, 그럼 기적이 아니지 않나요?”

교회의 답: 그 기록은 실제로 있어요. 그리고 회의론 쪽 결정적 증거와 신앙 쪽 결정적 증거가 둘 다 공개되지 않았다는 것이 이 사안의 진짜 상태예요.

먼저 이야기예요. 1531년은 테노치티틀란이 무너진 지 십 년째였어요. 정복의 폭력과 전염병으로 원주민 사회가 무너지고 있었고, 테페약 언덕에는 원래 토난친 여신의 신전이 있었어요. 『Nican Mopohua』가 전하는 나흘은 이래요. 12월 9일 후안 디에고 콰우틀라토아친이 언덕에서 한 여인을 만나고, 그 말을 수마라가 주교에게 전하지만 믿어 주지 않아요. 12월 10일 주교가 표징을 요구해요. 그런데 그날 삼촌 후안 베르나르디노가 코콜리츨리라는 열병으로 쓰러져요. 후안 디에고는 사제를 부르러 가느라 언덕을 피해서 돌아가요. 12월 12일 여인이 그 길에 나타나 삼촌은 이미 나았다고 말하고, 겨울인데 언덕에 핀 카스티야 장미를 틸마에 담아 가라고 해요. 주교 앞에서 틸마를 펼치자 장미가 쏟아졌고 천에 여인의 모습이 남아 있었어요.

그 천이 495년째 남아 있어요. 1785년에 작업자가 질산을 쏟았는데 용설란 섬유가 삭아 없어져야 했지만 작은 얼룩만 남았어요. 1921년 11월 14일에는 제단 아래에서 폭탄이 터져 쇠 십자가가 휘고 150미터 밖 유리창이 깨졌는데, 틸마와 그것을 덮은 평범한 유리는 멀쩡했어요. 휘어진 그 십자가가 지금도 전시돼 있어요.

인정 범위: 베네딕토 14세 교황이 1754년에 승인한 것은 전례적 공경과 고유 미사예요. 이미지의 초자연적 기원을 신앙의 조항으로 선언한 적은 없어요.

반박: “1556년에 공개 고발이 있었어요.” — 프란치스코회 관구장 프란치스코 데 부스타만테가 그해 9월 8일 설교에서 테페약의 이미지 공경을 정면으로 비판했고, 몬투파르 대주교가 연 조사에서 네 증인이 “사람의 손으로 그린 것”이라 진술했어요. 한 증인은 화가를 ‘인디오 마르코스’로 지목했어요. 발현의 상대였다는 수마라가 주교의 방대한 저술에는 발현 언급이 한 줄도 없어요. 선교사 사아군은 1576년경 테페약에 토난친 신전이 있었고 사람들이 새 성모를 여전히 그 이름으로 부른다고 걱정하며 적었어요. 그리고 1982년, 멕시코 국립 등록·보존 센터장 호세 솔 로살레스가 현미경으로 검사한 뒤 아교 밑칠이 있고 안료가 식별된다며 “비잔틴풍 템페라화”라고 결론지었어요.

다시 물으면: “그럼 결론이 난 것 아닌가요?” — 아니에요. 두 가지 때문이에요. 하나, 1979년 적외선 촬영을 한 필립 캘러헌의 주장은 덧칠과 원 이미지를 구분한다는 것이었어요. 얼굴과 손, 튜닉과 망토에는 밑그림도 붓자국도 없고, 덧칠은 후대에 더한 천사·달·금빛 광선·별에 국한된다는 거예요. 솔 로살레스가 검출한 안료가 바로 그 덧칠 부분일 가능성이 열려 있어요. 둘, 솔 로살레스의 보고서는 공개되지 않았어요. 회의론 쪽 결정적 증거도 검증할 수 없다는 점에서 신앙 쪽 자료와 같은 약점을 가져요. 결정적 검사는 어렵지 않아요. 비파괴 다분광 촬영이면 밑칠 유무가 결판나요. 대성당이 허락하지 않고 있어요.

한 문장 답: “‘사람이 그렸다’는 기록도, ‘밑그림이 없다’는 촬영도 다 실재해. 결판낼 검사는 아직 하지 않았고, 교회가 승인한 것은 기원이 아니라 공경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