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찾아가는 기적 · 질문 3
성체 성혈 대축일이 기적에서 시작됐다는데, 사실인가요?

질문: “볼세나에서 성체가 피를 흘려서 대축일이 생겼다고 배웠는데, 정말인가요?”
교회의 답: 여기서는 반박이 더 세요. 그런데 그 사실을 알고 나면 오르비에토에 갈 이유가 줄어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분명해져요.
전해지는 이야기는 이래요. 1263년, 로마로 순례 가던 보헤미아 사제 프라하의 페터가 볼세나의 성녀 크리스티나 성당에 들렀어요. 스스로 고백하기를 성체 안 그리스도의 실재를 두고 믿음이 흔들리던 중이었어요. 축성문을 외우고 성체를 들어 올렸을 때 피가 흘러 성체포를 적셨다고 해요.
이 이야기가 왜 그럴듯하게 들리는지 알려면 배경을 봐야 해요. 11세기에 투르의 베렝가리우스가 성체 안 실재를 상징으로 해석하면서 서방 교회 최초의 성체 논쟁이 벌어졌고, 그 여파가 이백 년을 갔어요. 1263년의 사제는 개인적으로 나약했던 게 아니라 그 시대 논쟁 한복판에 서 있었어요.
그리고 사람이 이어져요. 벨기에 리에주의 수녀 성녀 율리아나는 사십 년 가까이 성체를 기리는 축일을 세우자고 설득하고 다녔어요. 그때 리에주의 부주교가 트루아 출신 자크 팡탈레옹이었고, 그는 율리아나의 환시를 하느님에게서 온 것으로 믿었어요. 그 부주교가 1261년에 교황 우르바노 4세가 돼요. 로마가 불안해서 교황청은 오르비에토에 머물고 있었고, 볼세나는 지척이었어요.
1264년, 교황은 「Transiturus de hoc mundo」 칙서로 성체 성혈 대축일을 온 교회에 세워요. 그리고 그 축일의 미사와 성무일도를 짓는 일을 당시 오르비에토 도미니코회 수도원에 있던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맡겨요.
비유 — 우리가 지금도 부르는 노래가 거기서 나왔어요
성체 강복 때 부르는 「Tantum ergo」는 아퀴나스의 「Pange lingua」 마지막 두 절이에요. 「Panis angelicus」는 「Sacris solemniis」의 여섯째 절이고, 「O salutaris hostia」는 「Verbum supernum」의 마지막 두 절이에요. 대축일 미사의 부속가 「Lauda Sion」도 같은 자리에서 나왔어요. 기적을 증명하지 못해도, 우리가 매주 부르는 노래가 오르비에토에서 쓰였다는 것은 전승이 아니라 사실이에요.
인정 범위: 기적 자체에 대한 교회의 판정 문서는 없어요. 남아 있는 것은 성체포라는 유물과 그에 대한 공경, 그리고 대축일 제정이라는 별개의 사실이에요.
반박: “교황이 쓴 칙서에 기적 이야기가 한 줄도 없어요.” — 이게 가장 아픈 지적이에요. 그 기적이 계기였다면 설명이 안 돼요. 동시대 교황 전기들도 우르바노 4세의 오르비에토 체류를 상세히 적으면서 볼세나를 언급하지 않아요. 문헌 증거는 14세기부터 나오고, ‘피 묻은 성체포’ 설화는 그 이전 유럽 전설집에도 흔해요. 이 지적들은 『가톨릭 백과사전』이 스스로 적어 놓은 것이에요.
다시 물으면: “그럼 다 지어낸 이야기인가요?” — 그렇게까지 말하기도 어려워요. 성체포는 실물이 남아 있고, 1337년에 이미 시에나의 금세공가 우골리노 디 비에리에게 성궤를 맡길 만큼 지역 전승이 확립돼 있었어요. 그 성궤에 새겨진 칠보 여덟 장면은 이 사건을 이야기로 그린 현존 최초의 그림이에요. 다만 성체포 얼룩에 대한 현대적 분석은 한 번도 시행된 적이 없어요.
한 문장 답: “기적 쪽 증거는 이 목록에서 가장 약해. 그런데 대축일과 「Tantum ergo」가 거기서 나왔다는 건 전승이 아니라 사실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