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찾아가는 기적 · 질문 2

시에나에는 296년 동안 안 썩은 성체가 있다는데, 그냥 잘 마른 빵 아닌가요?

붉은 벽돌 정면에 큰 장미창이 난 시에나 성 프란치스코 대성전 사진

질문: “밀떡은 원래 건조하면 오래 가잖아요. 그걸 기적이라고 부르는 건 무리 아닌가요?”

교회의 답: 좋은 반문이에요. 그런데 이 사건에는 대조 실험이 실제로 있었어요.

1730년 8월 14일 밤, 성모 승천 대축일 전야에 도둑이 시에나 성 프란치스코 대성전에 들어가 감실의 금 성합을 통째로 훔쳐 갔어요. 안에는 축성된 제병이 들어 있었어요. 온전한 것 348개와 반쪽 6개였어요. 사흘 뒤 프로벤차노 성모 성당의 헌금함에서 전부 발견됐어요. 먼지와 거미줄이 엉겨 있었지만 제병은 온전했어요. 도둑은 끝내 잡히지 않았어요.

관례대로라면 되찾은 성체는 나누어 영해야 해요. 그런데 흙이 묻어 곧바로 그럴 수 없었고, 정결하게 하는 사이에 시간이 흘러도 상하지 않는다는 것이 드러났어요. 그래서 남겨 두고 지켜보기 시작했어요.

1780년 4월 14일, 프란치스코회 총장 카를로 비페라 신부가 제병 하나를 직접 영했어요. 신선하고 상하지 않았다고 보고한 뒤 남은 것은 다시 나누지 말고 보존하라고 지시했어요. 그리고 1789년, 시에나 대주교가 축성하지 않은 제병을 같은 조건의 상자에 넣어 봉했어요. 10년 뒤 학자 위원회가 열었을 때 안에는 벌레와 부스러기뿐이었어요.

1914년에는 성 비오 10세 교황의 인가로 시에나와 피사의 식품학·위생학·화학·약학 전문가 위원회가 조사했어요. 소견은 이랬어요. “밀가루는 미생물과 해충, 젖산 발효의 최적 배지인데 시에나의 입자들은 모든 불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완벽한 상태다.” 1922년, 1950년, 1951년에도 다시 검사했고 결론은 같았어요.

인정 범위: 교황이 인가한 것은 검사였어요. 보존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공경을 허락한 것이지, 초자연적 기원을 선언한 것이 아니에요.

반박: “1789년 실험은 현대 기준이 아니에요.” — 온도와 습도 기록이 없고, 두 상자가 정말 같은 조건이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어요. 시행한 사람도 이해관계가 있는 쪽이에요. 그리고 마지막 검사가 1951년이라 75년이 지났어요.

다시 물으면: “그래도 감실은 밀폐 용기니까 오래 가는 것 아닌가요?” — 감실은 밀폐 용기가 아니에요. 사제가 수시로 여닫고, 시에나는 습한 여름을 겪어요. 1914년 위원회는 그 제병이 거친 체로 친 밀가루로 만들어졌다는 점도 확인했는데, 거친 입도는 오히려 미생물에게 유리해요.

한 문장 답: “‘마른 빵이라 오래 간다’는 설명은 이미 1789년에 시험됐고, 축성하지 않은 쪽은 십 년 만에 썩었어. 다만 검사가 칠십오 년째 멈춰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