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찾아가는 기적 · 질문 10

썩지 않은 성인의 시신을 그대로 보는 건가요?

금빛 유리관에 수도복 차림으로 누운 성녀 베르나데트와 그 앞에 놓인 백합, 느베르 수녀원 사진

질문: “유리관 속 성인의 얼굴이 그대로 남아 있다던데, 정말 부패하지 않은 건가요?”

교회의 답: 대개는 아니에요. 베르나데트도, 아르의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도, 비오 신부도, 카를로 아쿠티스도 얼굴은 밀랍이나 실리콘이에요. 그리고 이것을 감춘 쪽은 교회가 아니에요. 교회가 남긴 발굴 보고서에 다 적혀 있어요.

베르나데트는 세 번 발굴됐어요. 1909년 9월 22일, 죽은 지 삼십 년째에 열었을 때 함께 묻은 십자가와 묵주는 녹슬었는데 시신은 온전했다고 보고됐어요. 1919년 4월 3일 두 번째 보고는 훨씬 구체적이에요. “시신은 실질적으로 미라화되었고 곰팡이 반점과 칼슘염으로 보이는 뚜렷한 염류층으로 덮여 있다. 피부는 일부 소실됐으나 대부분 부위에는 남아 있다.” 콩트 박사는 유해로 쓸 갈비뼈를 떼어 냈고, 흉곽 안 단단한 덩어리가 간이며 보존 상태가 놀랍다고 적었어요.

1925년 4월 18일 세 번째 발굴에서 의사들은 “부드럽고 거의 정상적인 굳기”라고 적으면서 동시에 얼굴의 변색과 코가 얇아진 것을 기록했어요. 유리관에 모셔 순례자에게 보일 예정이었으므로 얼굴과 손의 본을 떠서 밀랍을 씌웠어요. 이유도 보고서에 있어요. 얼굴이 거무스름해서 순례자에게 거부감을 줄까 봐예요. 밀랍을 만든 사람은 파리의 마네킹 장인 피에르 이망이에요.

카를로 아쿠티스에 대해서는 아시시 교구장이 먼저 밝혔어요. “시신은 시신에 전형적인 정상적 변화 상태로 발견되었다.” 얼굴은 실리콘으로 재현했고 심장은 따로 유해로 모셨어요. 아쿠티스는 2025년 9월 7일 피에르 조르조 프라사티와 함께 레오 14세 교황에 의해 시성됐어요.

인정 범위: 없어요. 시복·시성 절차에서 유해의 보존 상태는 심사 항목이 아니에요. 기적 심사는 치유에 대해서만 이루어져요. 교회는 ‘불부패’를 기적으로 정의한 적이 없어요.

비유 — 보존은 표징이 아니라 공경의 방식이에요

박물관이 오래된 그림을 유리 뒤에 걸고 조명을 낮추는 것은 그림이 신비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오래 함께 보기 위해서예요. 유해를 유리관에 모시고 얼굴을 복원하는 것도 같은 자리에 있어요. 표징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공경을 이어 가는 방식이에요.

반박: “자연적 보존은 흔한 일이에요.” — 시랍화, 저온과 건조한 매장 환경, 토양의 무기염, 방부 처리. 미라화는 특별한 일이 아니에요. 게다가 얼굴이 밀랍이면 ‘썩지 않았다’를 눈으로 확인할 방법이 없어요. 순례자가 보는 것은 보존된 얼굴이 아니라 복원된 얼굴이에요.

다시 물으면: “그럼 아무 의미도 없는 건가요?” — 그렇게까지 말할 것은 아니에요. 1879년에 묻힌 시신이 사십육 년 뒤 “부드럽고 거의 정상적인 굳기”였다는 것은 통상적이지 않고, 가장 먼저 사라지는 내장이 남아 있었다는 소견도 부패 과정으로 설명하기 어려워요. 다만 그것을 기적이라고 부를지는 교회가 정한 적이 없어요.

한 문장 답: “‘썩지 않은 성인’은 표징이 아니라 유해 공경의 한 방식이야. 얼굴이 밀랍이라는 것도 교회가 먼저 적어 놓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