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찾아가는 기적 · 질문 11

비오 신부의 오상은 스스로 만든 상처였나요?

수도복 차림으로 두 팔을 겹쳐 안고 선 비오 신부. 소매 밖으로 나온 손등에 상처가 보이는 흑백 사진

질문: “약국에서 산성 약품을 몰래 샀다는 기록이 나왔다던데, 그럼 만들어 낸 상처 아닌가요?”

교회의 답: 그 기록은 실재해요. 그리고 더 놀라운 사실이 있어요. 교회가 그를 2년 2개월 동안 침묵시켰어요.

프란체스코 포르지오네는 1887년 남부 이탈리아 피에트렐치나의 농가에서 태어나 열다섯에 카푸친회에 들어가 비오라는 이름을 받았어요. 1918년 8월 초에 먼저 ‘보이지 않는 상처’를 보고했고, 9월 20일 미사 뒤 감사 기도를 드리던 중 손과 발과 옆구리에 상처가 나타났어요. 그 상처는 오십 년 동안 이어졌고 1968년 9월 23일 선종과 함께 사라졌어요.

교회는 의사를 보냈어요. 회의적인 사람으로 골라서요. 1919년 7월 로마대 병리학 교수 아미코 비냐미가 검사성성의 파견으로 왔는데, 의학적 명성과 회의적 성향 때문에 뽑힌 사람이었어요. 그의 소견은 양쪽에 다 걸려요. 붕대에 봉인을 붙여 두고 확인하는 시험으로 자해는 배제했어요. 그러면서 자기암시로 시작된 피부 괴사가 요오드팅크 같은 약품으로 아물지 않게 유지됐을 가능성을 제기했고, 동시에 상처가 진짜이며 그 지속성은 설명되지 않는다고 인정했어요.

인정 범위: 1924년부터 1931년까지 성좌는 이 현상이 초자연적 원인과 연결된다는 것을 부인하는 공적 성명을 여러 차례 냈어요. 1931년 5월에는 미사를 제외한 모든 사제 직무를 금지했고, 미사조차 수도원 안에서 혼자 드려야 했어요. 금지가 풀린 것은 1933년 7월이에요. 2002년 시성은 덕행과 별도로 심사된 치유 기적에 근거해요. 오상의 초자연성을 판정한 것이 아니에요.

반박: “석탄산 구입 기록이 있어요.” — 역사가 세르조 루차토가 바티칸 문서고에서 찾아 2007년에 공개한 자료예요. 약사 마리아 데 비토의 증언에 따르면 1919년 비오 신부가 처방전 없이 석탄산 4그램을 사면서 비밀로 해 달라고 부탁했어요. 밀라노 가톨릭대를 세운 의사 아고스티노 제멜리는 이 현상을 “암시의 산물”로 판정했고요.

다시 물으면: “그럼 다 밝혀진 것 아닌가요?” — 세 가지가 남아요. 첫째, 제멜리는 상처를 본 적이 없어요. 비오 신부가 상급자의 서면 허가 없이는 보여 주지 않아서, 보지 않은 채 소견서를 썼어요. 둘째, 석탄산에는 다른 설명이 있어요. 1918~19년 스페인 독감이 돌던 때라 주사기 소독용이었다는 것이 당시 수도원의 설명이고, 실제로 검진한 의사들은 상처가 관통상 형태이고 부식성 화상의 양상이 아니라고 보고했어요. 구입 기록은 사용 기록이 아니에요. 셋째, 1931년 금지 뒤에도 상처는 계속됐어요. 보여 줄 대중도, 교회의 승인도 없는 이 년 동안에요.

한 문장 답: “교회가 먼저 의심하고 그를 이 년 넘게 막았어. 그 침묵을 지난 뒤에 그가 한 일은 병원을 짓는 것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