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신경과 핵심 교리 · 질문 6

성부께서 죄 없는 아들을 죽여야만 용서하셨다면 잔인한 것 아닌가요?

십자가 곁에서 어린 양에게 자유롭게 두 팔을 내미는 예수님을 감싼 사랑의 원 추상 수채화

질문: “십자가는 화난 하느님이 아들에게 벌을 대신 준 사건인가요?”

교회의 답: 성부와 성자는 서로 뜻이 다른 두 신이 아니에요. 성부께서 원하지 않는 아들을 억지로 희생시키고 분을 푸신 것도 아니에요. 성부께서는 세상을 사랑하여 성자를 보내셨고, 성자께서는 성부와 우리를 사랑하여 당신 생명을 자유로이 내어 주셨어요. 예수님은 “아무도 나에게서 목숨을 빼앗지 못한다. 내가 스스로 그것을 내놓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어요.

예수님의 처형은 실제 인간들이 자유롭게 저지른 불의였고, 그 책임이 없어지지 않아요. 하느님은 그 악을 선하다고 부르거나 악이 필요하다고 꾸미지 않으셨어요. 오히려 사람이 만든 최악의 폭력 한가운데로 들어오셔서 죄와 죽음의 짐을 몸소 지시고, 용서와 화해와 부활의 길을 여셨어요. 십자가는 하느님이 남의 고통을 요구하신 장면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성자 안에서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며 자신을 내어 주신 사건이에요.

다시 물으면: “전능하신 하느님이면 그냥 용서하면 되지 왜 십자가가 필요했나요?” — 하느님보다 강한 어떤 법이 피를 요구하여 하느님을 억지로 묶은 것은 아니에요. 동시에 용서는 악을 없던 일로 꾸미는 말도 아니에요. 그리스도께서는 죄가 만든 단절과 죽음을 실제로 짊어지고, 순종과 사랑으로 인간의 불순종을 바로잡으며 우리를 하느님과 화해시키셨어요. 왜 하느님께서 이 길을 택하셨는지 다 헤아릴 수는 없지만, 십자가에서 드러난 것은 잔혹함을 향한 욕구가 아니라 죄인에게 먼저 다가오시는 사랑이에요.

한 문장 답: “십자가는 성부가 원치 않는 아들에게 화풀이한 사건이 아니야. 성부와 성자께서 한 사랑으로 우리를 구하시고, 성자께서 자유로이 우리 죄와 죽음을 짊어지신 사건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