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2일 · 선택기념일

성 토마스 모어

성 토마스 모어 — 튜더 시대의 절제된 법률가 옷차림을 한 토마스 모어가 서명을 요구받은 문서 앞에서 펜을 내려놓는다
원어
Thomas Morus
살던 때
1478~1535년
살던 곳
영국 런던
자리
법률가 · 대법관 · 순교자
수호
정치인 · 법률가

평신도순교자학자·교사법·정치가정·부부·형제글·책박해를 견딤감옥·유배유머·기쁨정의·차별에 맞섬영국

「임금의 좋은 신하였지만, 하느님의 신하가 먼저입니다.」

변호사이자 국회의원이었고 마침내 잉글랜드의 대법관이 되었습니다. 그의 집은 당대 유럽 지성의 사랑방이었고 에라스무스가 오래 머물렀습니다. 『유토피아』를 쓴 사람이기도 합니다. 딸들에게 아들과 똑같이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가르친 것도 그 시대로서는 드문 일이었습니다.

왕의 이혼과 교회 수장령에 그는 서명하지 않았습니다. 반대한다고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침묵했습니다. 법률가로서 그는 침묵이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왕은 위증을 세워 그를 유죄로 만들었습니다.

처형대에 오르며 그는 집행인에게 농담을 건넸다고 전합니다. 오르는 것은 좀 도와주게, 내려오는 것은 알아서 하겠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했습니다. 나는 임금의 좋은 신하로 죽지만 하느님의 신하가 먼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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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그 자료를 비롯한 교회 문헌을 바탕으로 이 홈페이지에서 새로 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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