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2일 · 선택기념일

성 요한 피셔

성 요한 피셔 — 런던탑의 작은 방에서 늙은 피셔 주교가 서명을 요구받은 문서 앞에 조용히 손을 모은다
원어
Joannes Fisher
살던 때
1469~1535년
살던 곳
영국 로체스터 · 케임브리지
자리
주교 · 추기경 · 순교자

주교순교자학자·교사박해를 견딤학문·철학·과학감옥·유배정의·차별에 맞섬가르침·교육영국

영국의 모든 주교가 왕의 편에 섰을 때, 그 혼자 서지 않았습니다.

스물둘에 특별 관면을 받아 사제가 되었고, 케임브리지 대학의 총장을 지내며 학교를 키웠습니다. 에라스무스를 불러와 그리스어를 가르치게 한 사람도 그입니다. 로체스터는 잉글랜드에서 가장 가난한 교구였는데, 그는 더 큰 자리로 옮기지 않고 삼십 년을 거기 있었습니다.

헨리 8세가 이혼을 하려고 교회의 머리가 되겠다고 나섰을 때, 잉글랜드의 주교들이 차례로 서명했습니다. 그는 하지 않았습니다.

런던탑에 갇혔습니다. 감옥에 있는 동안 교황이 그를 추기경으로 임명하자 왕이 격노했습니다. 추기경 모자가 도착하면 쓸 머리가 없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1535년 6월 22일 참수되었습니다. 예순여섯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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