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찾아가는 기적 · 질문 8
7만 명이 봤다는 파티마의 태양, 왜 사진이 한 장도 없나요?

질문: “수백 명이 카메라를 들고 있었는데 진짜 사진이 없다면 안 일어난 것 아닌가요?”
교회의 답: 사진이 없다는 것은 사실이에요. 그리고 널리 도는 ‘태양의 기적 사진’은 약 팔 년 뒤 다른 마을에서 찍힌 다른 태양 현상임이 밝혀졌어요. 이 사실을 숨기고 소개하면 순례자가 나중에 인터넷에서 혼자 알게 돼요.
그러니 이 항은 “지금도 남아 있는 기적”이 아니라 “지금도 남아 있는 증언의 장소”로 보는 편이 정확해요.
배경은 이래요. 1910년에 왕정이 무너지고 들어선 포르투갈 제1공화국은 수도회를 해산하고 종교 교육을 금지했어요. 동시에 1차 대전에 참전해 젊은이들이 죽고 식량이 모자랐어요. 그리고 발현은 1917년에 시작하지 않아요. 1916년에 ‘평화의 천사’가 세 아이 앞에 세 차례 나타났다고 해요. 아이들은 루치아 열 살, 프란치스쿠 아홉 살, 자친타 일곱 살이었어요.
한국어 자료에서 가장 많이 빠지는 대목은 8월이에요. 8월 13일 아침, 오렝의 행정관 아르투르 드 올리베이라 산투스가 아이들을 차에 태워 데려갔어요. 회유하고 협박하고, 비밀을 말하지 않으면 기름에 튀기겠다며 다른 죄수들과 함께 감옥에 가뒀어요. 아이들은 말하지 않았어요. 같은 방 죄수들이 나중에 증언하기를, 아이들이 울다가 이내 다 함께 묵주 기도를 바쳤다고 했어요. 8월 15일에 풀려났고, 그래서 그달 발현은 8월 19일 발리뉴스에서 있었어요.
10월 13일은 석 달 전에 예고된 날이었어요.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5만에서 7만 명이 모였고, 회의적인 언론이 조롱하러 와 있었어요. 그리고 세 아이 중 둘은 곧 죽어요. 프란치스쿠가 1919년 4월 4일, 자친타가 1920년 2월 20일, 스페인 독감이었어요. 둘은 2017년에 시성됐어요.
인정 범위: 1930년 10월 13일 레이리아 주교가 선언한 것은 “믿을 만하다”와 공적 공경 허가예요. 초자연성을 확정한 것이 아니에요. 십삼 년을 조사하고 그 수위에서 멈춘 것이 이 판정의 무게예요.
반박: “태양을 오래 보면 그런 것이 보여요.” — 루뱅 가톨릭대 물리학자 오귀스트 메센은 망막 잔상과 광수용체 표백으로 색 변화와 ‘춤’을 설명해요. 다른 이들은 얇은 구름이 만든 은반, 먼지와 수증기의 굴절, 환일을 들어요. 증언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지적, 모두가 본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어요.
다시 물으면: “그럼 다 착시인가요?” — 잔상설로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 남아요. 날짜와 시각이 석 달 전에 공표됐고, 18킬로미터 떨어진 알부리텔에서도 같은 현상이 목격됐어요. 군중 심리는 거리를 건너지 못해요. 반교권 성향 일간지 『O Século』의 기자 아벨리누 드 알메이다가 현장 기사를 썼고, 그 글은 그해 화보 잡지에 군중 사진과 함께 실렸어요. 그 사진에 찍힌 것은 하늘이 아니라 하늘을 보는 사람들이에요. 폭우로 젖은 옷과 진창이 순식간에 말랐다는 증언도 다수예요. 수만 명 중 실명이나 망막 손상 보고가 한 건도 없다는 점도 남아요. 신학자이자 물리학자인 스탠리 재키는 절충안을 내놨어요. 빙정에 의한 굴절이 예고된 그 순간에 정확히 맞춰 일어난 것이 기적이라는 거예요.
한 문장 답: “물증은 없고 증언과 예고만 남았어. 그래서 교회도 ‘초자연적이다’가 아니라 ‘믿을 만하다’까지만 말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