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5일 · 선택기념일

성 그레고리오 7세

성 그레고리오 7세 — 로마의 검소한 회의 자리에서 그레고리오 7세가 성직 임명 문서를 살피다가 곁의 금전 주머니를 손으로 밀어 둔다
원어
Gregorius VII
살던 때
1020?~1085년
살던 곳
로마 · 살레르노
자리
교황

교황수도자·수녀개혁·쇄신박해를 견딤감옥·유배정의·차별에 맞섬이탈리아

황제를 눈밭에 사흘 세워 두었고, 자기는 유배지에서 죽었습니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힐데브란트라는 이름을 받았습니다. 로마의 수도원에서 자라 여러 교황을 도우며 오래 일했고, 쉰이 넘어 교황이 되었습니다.

그가 고치려 한 것은 두 가지였습니다. 성직을 돈으로 사고파는 일, 그리고 왕과 황제가 주교를 제 마음대로 앉히는 일. 두 번째가 신성로마제국 황제 하인리히 4세와의 정면충돌을 불렀습니다. 교황은 황제를 파문했고, 제후들이 등을 돌리자 황제는 1077년 겨울 카노사 성 앞에 사흘 동안 서서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힘을 되찾은 황제가 로마로 쳐들어왔고, 교황은 도망쳐 살레르노에서 죽었습니다. 마지막 말이 전합니다. 나는 의로움을 사랑하고 불의를 미워했으니 유배지에서 죽는다고. 그가 시작한 개혁은 실패한 듯 보였지만, 뒷사람들이 이어받아 ‘그레고리오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남았습니다.

더 읽을 곳 ·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굿뉴스 성인 자료
이 글은 그 자료를 비롯한 교회 문헌을 바탕으로 이 홈페이지에서 새로 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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