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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글로는 당대 최고였지만, 자리를 놓고 다투는 일 앞에서는 늘 먼저 물러섰습니다.
아버지도 나지안조의 주교였고 어머니는 그 아버지를 그리스도인으로 이끈 사람이었습니다. 아테네에서 공부하며 대 바실리오와 우정을 맺었고, 훗날 황제가 되어 교회를 등질 율리아누스와도 같은 강의실에 앉았습니다.
서른 무렵 세례를 받고 바실리오와 함께 강가에서 수도 생활을 시작했지만, 그의 생애는 자꾸 조용한 곳에서 끌려 나오는 쪽으로 흘렀습니다. 아버지의 권유로 사제가 되었고, 벗의 손에 주교로 세워졌으며, 아리우스파가 장악한 콘스탄티노플로 불려 가 작은 성당에서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그 설교가 도시를 돌려세웠습니다.
공의회는 그를 콘스탄티노플의 주교로 인정했지만 임명을 둘러싼 다툼이 커지자 그는 스스로 자리에서 내려왔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가 글을 쓰며 남은 날을 보냈고, 삼위일체를 말한 그의 연설문들 때문에 동방 교회는 그를 그냥 ‘신학자’라고 부릅니다. 그 이름으로 불리는 사람은 사도 요한과 그를 포함해 몇 되지 않습니다.
더 읽을 곳 ·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굿뉴스 성인 자료
이 글은 그 자료를 비롯한 교회 문헌을 바탕으로 이 홈페이지에서 새로 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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