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9일 · 기념일

성녀 시에나의 가타리나

성녀 시에나의 가타리나 — 시에나의 작은 방에서 가타리나가 교황에게 전할 편지를 진지하게 불러 주고 동료가 받아 적는다
원어
Catharina Senensis
살던 때
1347~1380년
살던 곳
이탈리아 시에나 · 로마
자리
도미니코회 3회원 · 교회학자
수호
이탈리아 · 유럽

수도자·수녀교회학자신비가동정녀글·책기도·침묵·관상병자 돌봄화해·일치·평화정의·차별에 맞섬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남박해를 견딤이탈리아

글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여자가 교황을 아비뇽에서 로마로 돌아오게 했습니다.

염색업자의 스물다섯 자녀 가운데 스물셋째로 태어났습니다. 부모가 결혼시키려 하자 끝까지 버텼고, 열여섯에 도미니코회 3회원이 되었습니다. 수녀원에 들어가지 않고 집에서 살면서 병자들, 특히 아무도 가까이 가지 않는 환자들을 돌보았습니다.

교황이 로마가 아니라 아비뇽에 있던 시절입니다. 그녀는 편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도시의 지도자들에게, 추기경들에게, 교황에게. 배운 것이 거의 없어 대개는 불러 주고 받아 적게 했습니다. 그 편지에서 그녀는 교황을 “나의 다정한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로마로 돌아가라고 몰아붙였습니다. 1376년에는 직접 아비뇽으로 갔습니다. 이듬해 교황은 로마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온 뒤 곧 교회는 교황이 둘인 분열로 들어갔고, 그 한가운데서 그녀는 서른셋에 죽었습니다. 남긴 『대화』와 편지들 때문에 교회학자로 선포되었습니다. 여자로서는 아빌라의 데레사와 함께 처음이었습니다.

더 읽을 곳 ·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굿뉴스 성인 자료
이 글은 그 자료를 비롯한 교회 문헌을 바탕으로 이 홈페이지에서 새로 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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