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순교자감옥·유배정의·차별에 맞섬화해·일치·평화노동·손일·장인이탈리아
노예였고, 은행 일로 감옥과 광산을 겪었고, 교황이 되었습니다.
노예로 태어나 그리스도인 주인의 재정을 맡았습니다. 맡은 돈을 잃어버려 도망쳤다가 붙잡혔고, 회당에서 벌어진 소동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발되어 사르데냐 광산으로 끌려갔습니다.
풀려난 뒤 교황이 그에게 부제품을 주고 아피아 가도의 교회 묘지 관리를 맡겼습니다. 그가 관리하던 그 지하 묘지를 지금도 갈리스토 카타콤바라고 부릅니다.
교황이 되자 반대가 거셌습니다. 노예 출신이라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관대했다는 것 때문입니다. 그는 큰 죄를 지은 사람도 참회하면 다시 받아들였고, 신분이 다른 사람들의 혼인을 교회가 인정해 주었습니다. 히폴리토가 그 관대함을 공격하며 갈라져 나갔습니다. 교회 역사에서 되풀이되는 다툼의 아주 이른 사례입니다.
더 읽을 곳 ·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굿뉴스 성인 자료
이 글은 그 자료를 비롯한 교회 문헌을 바탕으로 이 홈페이지에서 새로 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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