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수도자·수녀교회학자학자·교사글·책학문·철학·과학가르침·교육기도·침묵·관상화해·일치·평화이탈리아프랑스
토마스 아퀴나스와 같은 해에 파리에서 가르쳤고, 같은 해에 죽었습니다.
파리에서 공부하다 작은 형제회에 들어갔습니다. 신학 교수가 되어 강의했는데, 같은 시기 같은 대학에서 도미니코회의 토마스 아퀴나스가 가르쳤습니다. 두 사람은 같은 날 학위를 받았고, 같은 해에 죽었습니다.
서른여섯에 작은 형제회 총장이 되었습니다. 창립자가 죽은 뒤 회는 청빈을 어디까지 지킬 것인가를 두고 두 쪽으로 갈라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십칠 년 동안 그 둘을 한 지붕 아래 묶어 두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두 번째 창립자라고 부릅니다.
추기경으로 임명한다는 소식이 왔을 때 그는 수도원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었고, 사절에게 나무에 걸어 두고 기다리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리옹 공의회에서 동방과 서방 교회를 다시 잇는 일을 맡아 애쓰다가 공의회 도중에 죽었습니다.
더 읽을 곳 ·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굿뉴스 성인 자료
이 글은 그 자료를 비롯한 교회 문헌을 바탕으로 이 홈페이지에서 새로 쓴 것입니다.
이 글은 그 자료를 비롯한 교회 문헌을 바탕으로 이 홈페이지에서 새로 쓴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