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정녀순교자박해를 견딤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남감옥·유배이탈리아
청혼을 거절당한 집정관이 박해를 구실로 삼았습니다.
시칠리아의 부유한 집 딸이었습니다. 그리스어로 ‘좋다’는 뜻의 이름을 가졌고, 일생을 하느님께 드리기로 정해 두고 있었습니다. 그 지방 집정관 퀸티아누스가 청혼했다가 거절당하자, 그녀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알고 한창이던 박해를 자기 뜻대로 쓰기로 했습니다.
체포된 뒤 그녀가 겪은 일은 여기 옮기지 않겠습니다. 다만 그녀가 집정관에게 한 말은 전해집니다. 내 몸을 이렇게 해 놓고 부끄럽지 않으냐고, 당신도 여인의 젖을 먹고 자라지 않았느냐고, 내 몸은 도려내도 내 영혼은 도려내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감옥에서 죽었습니다. 카타니아 사람들은 지금도 그녀의 축일에 온 도시가 나섭니다. 그림 속에서 그녀가 접시에 무엇인가를 담아 들고 있는 것은 그때 잃은 것을 그린 것인데, 뒷날 그것을 빵으로 잘못 알아본 사람들이 ‘아가타 빵’을 만들어 나누는 풍습이 생겼습니다.
더 읽을 곳 ·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굿뉴스 성인 자료
이 글은 그 자료를 비롯한 교회 문헌을 바탕으로 이 홈페이지에서 새로 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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