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3일 · 선택기념일

성 푸아티에의 힐라리오

성 푸아티에의 힐라리오 — 프리기아 유배지의 작은 방에서 그리스어 신학서를 읽고 멀리 갈리아의 동료들에게 보낼 편지를 준비하는 주교
원어
Hilarius Pictaviensis
살던 때
310?~367년
살던 곳
프랑스 푸아티에
자리
주교 · 교부 · 교회학자

주교교부교회학자글·책학문·철학·과학감옥·유배박해를 견딤가정·부부·형제프랑스

성경에서 답을 찾고 뒤늦게 세례를 받았고, 그 믿음 때문에 사 년을 유배 살았습니다.

그리스도인 집안이 아니었습니다. 철학과 수사학을 배우고 고위 관리가 되었고, 결혼도 했습니다. 쾌락에도 철학자들의 말에도 더는 기댈 것이 없다고 느끼던 무렵 성경을 읽었고, 거기서 찾던 것을 만나 어른이 되어 세례를 받았습니다.

푸아티에 사람들이 그를 주교로 뽑았을 때는 이미 아리우스 논쟁이 제국의 절반을 삼키고 있었습니다. 그는 공개적으로 아리우스주의를 반대했고, 그 대가로 소아시아 프리기아로 추방되었습니다.

유배는 오히려 그를 키웠습니다. 서방의 주교로서 동방에 머물며 논쟁의 속을 정확히 알게 되었고, 그리스어로 된 신학을 읽었으며, 갈리아의 주교들과 편지를 주고받았습니다. 돌아온 뒤 그가 남긴 글들 덕분에 서방 교회는 아리우스주의를 정리할 발판을 얻었습니다.

더 읽을 곳 ·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굿뉴스 성인 자료
이 글은 그 자료를 비롯한 교회 문헌을 바탕으로 이 홈페이지에서 새로 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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