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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 우리가 믿는 것

사람과 원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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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 달린 나무를 사이에 두고 서로 등을 돌린 채 고개 숙인 두 사람, 갈라진 땅 위로 빛줄기가 내려앉는 수채화
  1. 사람이 「하느님의 모상」으로 지어졌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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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답 ③ 사람이 알아듣고 사랑하며 스스로 결정하는 인격이어서 하느님과 사귈 수 있다는 뜻이다

    모상은 생김새가 아니라 인격을 가리킵니다. 첫째처럼 읽으면 하느님을 사람 모양으로 끌어내리게 되고, 넷째와 달리 이 존엄은 세례 이전에 이미 모든 사람에게 있습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355-357항

  2. 사람의 몸과 영혼은 어떤 사이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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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답 ③ 사람은 몸이면서 영혼인 하나의 존재이며, 영혼은 그 몸을 사람의 몸이게 하는 형상이다

    교회는 사람을 몸과 영혼이 하나 된 존재로 봅니다. 첫째와 둘째는 몸을 감옥이나 껍데기로 낮추는 이원론이고, 넷째는 영혼을 아예 지우는 유물론입니다. 몸이 사람의 일부가 아니라 사람 자신이기에 우리는 몸의 부활을 믿습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362-365항

  3. 사람의 영혼은 부모에게서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곧바로 창조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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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답 ① 예

    예. 몸은 부모에게서 받지만 영혼은 하느님께서 직접 지어 주십니다. 그래서 영혼은 죽음으로 스러지지 않고, 마지막 날 몸과 다시 하나가 됩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366항

  4. 남자와 여자에 대해 교회가 가르치는 바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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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답 ② 둘은 똑같이 하느님의 모상이며 같은 존엄을 지니고, 서로를 위해 지어져 서로 도우며 하나를 이루도록 부름받았다

    창조 이야기는 남자와 여자를 나란히 하느님의 모상으로 세웁니다. 우열을 매기는 첫째도, 다름을 죄의 결과로 돌리는 셋째도, 다름을 아예 지워 버리는 넷째도 성경이 말하는 바가 아닙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369-372항

  5. 죄가 들어오기 전 사람이 누리던 「원초적 거룩함과 의로움」은 어떤 상태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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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답 ④ 하느님께서 거저 주신 은총으로 그분과 벗이 되어 조화를 누리던 상태였다

    이 상태는 사람의 성취가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이었습니다. 셋째는 그것을 죄를 지을 수 없는 강제로 오해한 것인데, 사람에게는 처음부터 자유가 있었고 바로 그 자유가 시험을 받았습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374-376, 396항

  6. 성경이 그리는 사람의 첫 죄는 무엇에서 비롯되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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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답 ① 하느님의 선하심을 믿지 못하고 그분 없이 스스로 하느님처럼 되려 한 교만과 불순종

    첫 죄의 뿌리는 하느님을 의심하고 그분 자리에 자기를 놓은 데 있습니다. 둘째는 오래된 오해이고, 셋째처럼 앎 자체를 죄로 돌리면 하느님을 앎의 원수로 만듭니다. 유혹은 밖에서 왔지만 선택은 사람의 자유였으므로 넷째도 아닙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397-398항

  7. 창세기 3장의 뱀과 나무는 옛사람들이 지어낸 이야기일 뿐이어서, 인류의 처음에 실제로 있었던 일을 전하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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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답 ② 아니요

    아니요. 교회는 그 대목이 상징이 담긴 말로 쓰였음을 인정하면서도, 인류 역사의 처음에 있었던 실제 사건을 전한다고 가르칩니다. 이야기의 옷을 알아본다고 해서 그 안의 사건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390항

  8. 사람을 유혹한 악마는 어떤 존재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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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답 ④ 본래 선하게 지어진 천사였으나 스스로 하느님을 등진 존재다

    하느님께서 악한 것을 지으신 적은 없습니다. 악마의 악함은 받은 본성이 아니라 돌이키지 않은 선택에서 왔습니다. 첫째는 선과 악을 대등한 두 뿌리로 놓는 이원론으로, 하느님의 유일한 주권을 무너뜨립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391-395항

  9. 원죄를 「죄」라고 부르는 것은 어떤 뜻에서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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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답 ② 우리가 저지른 행위가 아니라 은총을 잃은 채 물려받는 본성의 상태이므로, 본디 뜻이 아닌 유비의 뜻에서다

    원죄는 우리가 한 일이 아니라 우리가 태어나며 놓이는 자리입니다. 첫째처럼 제가 지은 죄로 읽거나 셋째처럼 남의 잘못을 대신 벌받는 것으로 읽으면, 하느님을 부당한 분으로 만들게 됩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404, 405항

  10. 원죄로 사람의 본성은 아주 못쓰게 망가져, 선을 알아보고 바랄 힘조차 남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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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답 ② 아니요

    아니요. 본성은 상처를 입었으나 무너지지는 않았습니다. 사람은 여전히 선을 알아보고 바랄 수 있으며, 다만 은총 없이는 거기에 온전히 이르지 못합니다. 본성이 통째로 썩었다는 설명은 교회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405, 406항

  11. 세례를 받고 나면 원죄와 그 자취는 어떻게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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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답 ① 원죄는 참으로 없어지지만, 죄로 기울어지는 성향인 「사욕 편정」은 남아 평생의 싸움이 된다

    세례는 원죄를 참으로 없애지만 죄로 끌리는 힘은 남아, 이겨 내라고 주어진 싸움터가 됩니다. 둘째처럼 다 사라졌다고 여기면 자기 안의 싸움에 도리어 놀라게 되고, 셋째는 세례의 힘을 덮개로 줄입니다. 넷째와 달리 아직 동의하지 않은 끌림은 죄가 아닙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405, 1264항

  12. 교회가 원죄를 이야기하며 함께 전하는 소식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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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답 ② 하느님께서 죄가 들어온 그날 이미 구원을 약속하셨고, 새 아담이신 그리스도의 순종이 그 불순종을 갚았다는 것

    원죄는 절망을 가르치려고 전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구원이 얼마나 큰지 알 때에야 원죄가 무엇이었는지도 비로소 보이며, 그 은총은 넷째와 달리 잃은 것을 되찾는 정도를 훌쩍 넘어섭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410-412, 420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