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 우리가 사는 것 · 문제 1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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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 우리가 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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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④ 앞의 셋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길, 뒤의 일곱은 이웃을 사랑하는 길
두 개의 돌판이라는 오랜 그림이 이 나눔을 담고 있습니다. 난이도나 시대로 가르면 십계명 전체가 사랑의 두 계명으로 요약된다는 점을 놓치게 되고, 마음과 몸으로 가르는 것도 계명을 안팎으로 쪼개는 오해입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2067, 2083항
정답 ① 하느님을 믿고 바라고 사랑하며 그분만을 흠숭하라는 것
첫째 계명은 금지 조항으로만 읽히기 쉽지만, 그 속살은 신덕·망덕·애덕을 살라는 적극적인 부름입니다. 둘째와 넷째는 이 계명을 우상 금지 한 줄로 좁힌 오해이고, 셋째는 계명이 남을 심판할 권한까지 준다는 착각입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2084-2086, 2093항
정답 ② 아니요
공경은 형상 자체에 머무르지 않고 그 형상이 가리키는 분께로 건너갑니다. 우상 숭배는 피조물을 하느님 자리에 앉히는 일이므로, 하느님께만 드리는 흠숭과 성인께 드리는 공경은 종류가 다릅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2131-2132항
정답 ④ 돈이나 권력, 쾌락처럼 하느님이 아닌 것을 절대 자리에 앉히는 일이 곧 우상 숭배이기 때문
우상 숭배는 재료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이 무엇을 맨 윗자리에 두는가의 문제입니다. 신상 만드는 일로만 좁히면 정작 제 삶을 지배하는 우상을 보지 못하고, 남의 예식을 구경한 것까지 우상 숭배로 몰면 계명이 겨누는 자리를 잃습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2112-2114항
정답 ③ 앞날을 하느님 손이 아닌 다른 힘에 맡기고, 숨은 힘으로 사람과 일을 부리려는 뜻이 담기기 때문
문제는 적중률도 유행도 아니고 마음이 향하는 방향입니다. 하느님께 드릴 신뢰와 순종을 다른 힘에 넘기고 그 힘으로 남을 좌우하려는 뜻이 미신과 점술과 마술의 뿌리입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2115-2117항
정답 ② 신앙은 강요될 수 없고, 사람은 진리를 자유로이 찾아 따라야 하기 때문
종교의 자유는 모든 종교가 똑같다는 상대주의에서 나온 결론이 아닙니다. 진리는 진리 자체의 힘으로 양심에 다다르는 것이므로, 억지로 심어진 믿음은 애초에 믿음이 아닙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2104-2106항
정답 ① 예
예. 다만 그 책임의 무게는 사람이 처한 사정에 따라 크게 달라집니다. 신자들의 어긋난 삶이 하느님의 얼굴을 가린 탓도 적지 않다고 교리서는 나란히 짚습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2123-2126항
정답 ② 하느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겨 함부로 부르거나 욕되게 하지 않는 것
이름을 부르지 말라는 계명이 아니라 이름을 거룩히 모시라는 계명입니다. 하느님의 이름은 찬미와 기도와 축복 안에서 불려야 하며, 분노나 저주나 헛맹세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2142-2144, 2146항
정답 ① 진리 자체이신 하느님을 거짓의 증인으로 끌어들이는 일이기 때문
위증의 무게는 들킬 위험이나 형벌에 있지 않습니다. 진리이신 분께 거짓을 보증해 달라고 청하는 셈이기 때문입니다. 맹세 자체는 마땅한 이유가 있을 때 허용되며, 아무 때나 가볍게 하는 것이 금지될 뿐입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2150-2152, 2155항
정답 ③ 하느님이 사람을 저마다 이름으로 부르시고, 그 이름은 거룩히 여겨져야 하기 때문
하느님은 사람을 무리로 뭉뚱그리지 않으시고 이름으로 부르시며, 세례로 받은 이름은 그 부르심을 기억하게 합니다. 성인의 이름은 능력이 옮겨 오는 통로가 아니라 본보기와 전구를 주는 것이고, 옛 이름을 부정하게 여겨 버리라는 뜻도 아닙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2156-2159항
예. 주일은 안식일을 밀어낸 것이 아니라 그 뜻을 이룹니다. 한 주의 첫날에 시작된 창조와 부활로 이루어진 새 창조가 겹치면서, 그날은 「주님의 날」이 되었습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2174-2176항
정답 ④ 중대한 이유 없이 빠뜨리는 것은 무거운 죄다
병이나 돌봄처럼 중대한 이유가 있으면 의무를 면하고, 그런 처지에서는 말씀 전례에 참여하거나 개인·가정의 기도를 바치도록 권고됩니다. 그러나 「마음만 있으면 된다」거나 중계로 늘 대신하겠다는 생각은 주일 미사가 함께 모여 성체를 나누는 공동체의 일이라는 점을 지웁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2180-2181, 2183항
정답 ① 하느님께 예배드리고 가족과 가난한 이를 돌보며 사람답게 숨 쉬도록 지켜 주는 것이다
주일의 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무엇을 위한 비움입니다. 필요한 봉사와 돌봄은 주일에도 이어지며, 교회가 경계하는 것은 습관과 이익 때문에 사람을 끝없이 노동에 묶어 두는 일입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2184-2186항
교회는 신자들에게 주일의 쉼이 모두에게 돌아가도록 공적인 조건을 마련하라고 요구합니다. 남의 노동을 당연히 여기며 제 주일만 누리는 태도는 셋째 계명이 지닌 사회적 얼굴을 지우는 것입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2187-2188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