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 우리가 바치는 것 · 문제 1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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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 우리가 바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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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② 주님께서 몸소 가르쳐 주신 기도로, 복음이 전하는 것이 이 안에 다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이 기도는 주님께서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시며 손수 건네주신 것이고, 그 안에 복음이 바라는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넷째는 이 기도를 사도들의 작품으로 돌리는 흔한 착각이고, 셋째는 성경 읽기를 대신하는 간추림쯤으로 여기는 오해입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2759, 2761-2763항
정답 ① 예
예. 루카는 다섯 청원으로, 마태오는 일곱 청원으로 전하는데 교회의 전례 전통은 마태오의 형태를 받아들였습니다. 두 형태가 다르다고 해서 어느 하나가 틀린 것은 아니며, 같은 기도를 각 공동체가 간직해 온 자취입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2759, 2760항
정답 ① 앞의 세 청원은 아버지의 영광을 향하고, 뒤의 네 청원은 우리의 처지를 아뢴다
아버지의 이름과 나라와 뜻을 먼저 청하고, 그다음에 양식과 용서와 유혹과 악을 아룁니다. 하느님을 먼저 바라보고 나서 우리를 아뢰는 이 차례 자체가 기도하는 법을 가르칩니다. 둘째나 셋째처럼 나누면 앞의 세 청원이 온전히 하느님께 향한 것임을 놓치게 됩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2803-2806항
정답 ③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된 하느님 백성으로서 함께 아뢰는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새 계약 안에서 그리스도의 형제자매가 된 이들이 함께 부르는 말입니다. 그래서 혼자 골방에서 바쳐도 이 기도는 여전히 「우리」이며, 이 한마디가 갈라진 그리스도인들의 일치를 향한 부름이 되기도 합니다. 첫째처럼 여럿이 모였을 때만 쓰는 기도로 여기면 그 뜻이 도리어 뒤집힙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2786-2793항
정답 ④ 장소가 아니라 하느님의 존재 방식을 가리키며, 그분께서 의로운 이들의 마음 가까이 계심을 함께 말합니다
하늘은 하느님을 가두어 두는 자리가 아니라 그분의 위엄과 거룩하심을 이르는 말입니다. 첫째와 셋째는 하느님을 우주 어딘가에 놓아두려는 착각이고, 둘째는 멀리 계신 만큼 무관심하시리라는 오해인데 오히려 그분은 우리 마음 가장 가까이 계십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2794-2796항
정답 ②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와 하나 되어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이 부름은 우리 쪽의 자격에서 오지 않고 세례로 받은 양자됨에서 옵니다. 그래서 전례는 이 기도를 시작하기에 앞서 「감히 아뢰나이다」라고 말합니다. 넷째는 아버지라는 말을 성별로 읽는 오해인데, 하느님은 남자도 여자도 아니시며 아버지 되심은 모든 것의 근원이시고 사랑이심을 가리킵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239, 2777-2782항
정답 ② 아니요
하느님의 이름은 우리가 보태지 않아도 이미 거룩합니다. 이 청원은 그 거룩하심이 우리 안에서, 또 우리를 통하여 알아 뵙게 되고 드러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가 이 청원에 함께 걸려 있습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2807-2815항
정답 ③ 그리스도의 다스리심으로, 이미 시작되었으나 마지막 때에 완성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예수님과 함께 이미 와 있고, 그분께서 다시 오실 때 온전히 드러납니다. 첫째는 그 나라를 세상 권력으로 바꿔 읽는 오해이고, 넷째는 사람이 이루어 낼 계획으로 만드는 오해이며, 둘째는 그 나라를 오늘과 무관한 먼 이야기로 미뤄 두는 오해입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2816-2821항
정답 ①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아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은 끝까지 감춰진 수수께끼가 아니라 이미 밝혀졌습니다. 모두가 구원받는 것이고, 그 뜻을 온전히 사신 분이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라 하신 예수님이십니다. 둘째와 넷째는 이 청원을 운명론으로 바꾸고, 셋째는 하느님의 뜻과 내 뜻의 자리를 맞바꾸는 오해입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2822-2827항
정답 ④ 몸을 살리는 오늘의 양식이면서, 생명의 빵이신 그리스도를 함께 가리킵니다
교회는 이 청원을 몸의 양식으로도, 성체로도 읽어 왔습니다. 「오늘」과 「저희」라는 말이 나란히 붙어 있어 쌓아 두기보다 나누라는 부름이 되고, 굶주린 이웃에 대한 책임으로 이어집니다. 첫째와 둘째는 한쪽만 붙잡은 반쪽 진리입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2828-2837항
이 대목의 「하오니」는 무섭도록 진지한 말입니다. 하느님의 자비에는 끝이 없지만, 우리가 마음을 닫고 있으면 그 자비가 우리 안으로 들어오지 못합니다. 다만 용서할 힘이 우리에게서 나오지 않는다는 것도 이 청원의 진실이어서, 성령께 청하며 시작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2838-2845항
정답 ② 유혹의 길에 발을 들이지 않게, 또 들어섰더라도 넘어가지 않게 지켜 주십사는 청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악에 유혹당하지도 않으시고 누구를 유혹하지도 않으십니다. 셋째처럼 시련과 유혹을 뒤섞으면 안 되는데, 시련은 우리를 자라게 하지만 유혹은 죄로 이끕니다. 넷째도 흔한 오해로, 죄가 되는 것은 유혹을 느끼는 일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결정입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2846-2849항
정답 ③ 막연한 무엇이 아니라 하느님과 그분의 계획을 거스르는 자, 곧 악한 자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악은 흐릿한 기운이 아니라 인격을 지닌 존재, 곧 사탄입니다. 첫째와 넷째는 악을 상황이나 불행으로만 옮겨 놓고, 둘째는 악을 사람의 심리로 줄여 버립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그를 이기셨기에 이 청원은 두려움이 아니라 신뢰로 바치는 것입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2850-2854항
예. 마태오 복음의 가장 오래된 사본들에는 이 대목이 없고, 초기 교회의 전례가 이 찬미를 이어 붙여 왔습니다. 덧붙인 것이라 해서 가벼운 말은 아니며, 앞의 세 청원인 이름과 나라와 뜻을 다시 받아 하느님께 돌려 드리는 마침입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2760, 2855-2856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