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노 사건의 배경 · 형벌의 역사
1600년의
평범한 일
브루노를 불태운 그 불은, 그 시대 사람들에게 특별히 끔찍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왜 그랬는지 — 그리고 그것이 왜 변명이 될 수 없는지.
그날 아침의 광장
사람들은 피해 다니지 않았습니다. 구경하러 모여들었습니다
이것이 이 이야기의 출발점입니다. 우리가 브루노의 죽음을 끔찍하게 느끼는 것은 우리가 21세기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날 그 광장에 서 있던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게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 시대의 형벌 체계
죄목마다 죽이는 방법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화형은 그중 하나였습니다
누가 이 법을 만들었나
이단을 불태우라는 법을 먼저 만든 것은 교회가 아니라 황제였습니다
가톨릭만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한 사람이 가톨릭과 개신교 양쪽에서 동시에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실제 숫자
종교재판이 곧 화형이었던 것도 아닙니다
더 뜻밖의 사실도 있습니다. 현대 연구자들은 종교재판소의 절차가 당대의 세속 법정보다 오히려 정비되어 있었다고 봅니다. 변호인을 붙일 수 있었고, 고문의 횟수와 시간에 제한이 있었으며, 상소가 가능했습니다. 세속 법정으로 갈 바에는 종교재판소로 가려고 일부러 신성모독을 저질렀다는 기록까지 남아 있습니다.
그렇다고 아무도 몰랐던 것은 아닙니다
그 시대에도 이건 아니라고 말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다들 그랬다"가 완전히 맞는 말은 아닙니다. 소수였지만 분명히 있었고, 그들은 목숨을 걸고 말해야 했습니다. 다르게 볼 수 있는 눈이 그 시대에도 있었다는 뜻입니다.
1554
“사람을 죽이는 것은 교리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세르베투스가 불탄 이듬해, 칼뱅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쓴 글입니다. 그는 이 글을 살아서 출판하지 못했습니다.
세바스티안 카스텔리오 · 『칼뱅의 소책자에 반대하여』
1588
“자기 추측 때문에 사람을 산 채로 굽는 것은, 그 추측을 너무 비싸게 사는 일이다”
마녀 재판을 두고 한 말입니다. 확신이 사람의 목숨보다 비쌀 수 있느냐는 물음이었습니다.
미셸 드 몽테뉴 · 『수상록』 「절름발이에 관하여」
1631
“내가 형장까지 따라간 사람들 가운데, 죄가 있다고 확신할 수 있었던 이는 없었다”
마녀 재판에서 사형수를 돌보던 예수회 사제가 고문 절차를 안에서 고발했습니다. 이름을 밝힐 수 없어 익명으로 냈습니다.
프리드리히 슈페 신부 · 『범죄에 대한 경고』
그러므로 정확한 표현은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다"가 아니라 "압도적 다수가 당연하게 여겼고, 반대하는 사람은 위험을 무릅써야 했다"입니다. 이 차이가 뒤에 가서 중요해집니다.
생각이 바뀌기까지
당연하던 것이 끔찍한 것이 되는 데 400년이 걸렸습니다
그래서 결론은
"그때는 다 그랬다"는 설명은 되지만 변명은 되지 않습니다
교회의 목자들이 자기 법정에서 로마법의 규정을 본받아 그러한 관행을 받아들인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2298항 — 요지 옮김. 교회 자신이 쓴 표현은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가 아니라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양쪽으로 자주 어긋나는 이야기들
사실은 이렇습니다
종교재판이 수십만 명을 불태웠다
스페인 종교재판소 기록 44,674건 분석에서 사형 판결은 약 1.9%입니다. 절대 수도 수천 명대로 추정됩니다. 적어서 괜찮다는 뜻이 아니라, 알려진 숫자가 사실과 크게 다르다는 뜻입니다.
가톨릭 교회만 사람을 불태웠다
칼뱅의 제네바, 루터파 영방, 잉글랜드 국교회가 모두 같은 법을 썼습니다. 마녀 재판은 오히려 개신교 지역에서 더 격렬했습니다.
종교재판소가 세속 법정보다 잔인했다
현대 연구의 결론은 반대에 가깝습니다. 변호인, 고문의 제한, 상소 절차가 있었습니다. 당대 기준으로 상대적으로 정비된 법정이었습니다.
그때는 다 그랬으니 교회 잘못이 아니다
교회 자신이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교리서는 "유감스러운 일"이라 하고, 공의회는 "복음 정신에 어긋나는 행동 방식"이었다고 합니다. 맥락은 설명이지 면죄가 아닙니다.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다
소수였지만 있었습니다. 카스텔리오, 몽테뉴, 그리고 예수회 사제 슈페. 그들이 익명으로 써야 했다는 사실이, 다르게 볼 눈이 그 시대에도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오늘
교회는 이 문제에서 계속 움직여 왔습니다
1965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종교의 자유를 인간 존엄에 근거한 권리로 선언했습니다. 2018년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리서 2267항을 고쳐, 사형이 "복음에 어긋나며 인간의 불가침한 존엄에 대한 공격"이므로 허용될 수 없다고 명시했습니다. 400년 전에는 형벌의 한 방식이었던 것이, 이제는 원칙적으로 배제됩니다.
오늘날 우리는 아무리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라도 그 인격의 존엄을 잃지 않는다는 것을 더 분명히 깨닫고 있습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2267항, 2018년 개정 — 요지 옮김
여기서 한 가지 물음이 남습니다. 1600년의 사람들은 자기들이 무언가 끔찍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것 가운데, 400년 뒤 사람들이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일은 무엇일까요. 이 물음을 던질 줄 아는 것이, 브루노의 불이 우리에게 남긴 몫입니다.
더 확인하실 곳
- 『가톨릭 교회 교리서』 2298항(고문과 잔인한 형벌) · 2267항(2018년 개정, 사형)
-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종교 자유 선언 「인간 존엄성」 1항 · 12항
- 프란치스코 교황, 회칙 「모든 형제들」 263–270항 — 사형 폐지 촉구
- 구스타프 헤닝센, 스페인 종교재판소 재판 기록(Relaciones de causas) 44,674건 통계 분석, 1540–1700
- 존 테데스키, 『신앙의 재판소 — 로마 종교재판소 연구』 — 절차와 세속 법정의 비교
- 세바스티안 카스텔리오, 『이단자에 관하여』(1554) · 『칼뱅의 소책자에 반대하여』
- 프리드리히 슈페, 『범죄에 대한 경고』(Cautio Criminalis), 1631 — 익명 출판
- 미셸 드 몽테뉴, 『수상록』 3권 11장 「절름발이에 관하여」, 1588
- 체사레 베카리아, 『범죄와 형벌』, 1764
- 1184년 베로나 칙령 · 1224년 프리드리히 2세 제국법 · 1231년 그레고리오 9세 교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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