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노 사건의 배경 · 형벌의 역사

1600년의
평범한 일

브루노를 불태운 그 불은, 그 시대 사람들에게 특별히 끔찍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왜 그랬는지 — 그리고 그것이 왜 변명이 될 수 없는지.

그날 아침의 광장

사람들은 피해 다니지 않았습니다. 구경하러 모여들었습니다

1600년 2월 17일 아침의 캄포 데 피오리를 도식으로 옮긴 것입니다. 가운데 점 하나 없는 빈자리가 말뚝이고, 나머지는 전부 사람입니다. 처형은 숨어서 하는 일이 아니라 광장에서 하는 공개 행사였습니다. 창문이 있는 집은 자리를 빌려주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이 이야기의 출발점입니다. 우리가 브루노의 죽음을 끔찍하게 느끼는 것은 우리가 21세기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날 그 광장에 서 있던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게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 시대의 형벌 체계

죄목마다 죽이는 방법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화형은 그중 하나였습니다

죄목 정해진 처형 방식 귀족이 지은 중죄 참수 가장 명예로운 죽음으로 여겨짐 절도 · 강도 교수 가장 흔한 방식 이단 · 마술 · 화폐 위조 화형 브루노가 받은 판결 강도 살인 수레바퀴에 매달아 뼈를 부러뜨림 독일 · 프랑스 대역죄 목매달아 끌어내려 사지를 자름 잉글랜드 재세례파 · 영아 살해 물에 빠뜨림 일부 지역 여섯 가지 모두 당시 유럽에서 실제로 집행되던 방식입니다
처형 방식은 잔인함의 정도로 고른 것이 아니라 죄목에 따라 배정된 것이었습니다. 화형이 이단에 배정된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성직자는 피를 흘리게 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 있었고, 화형은 피를 흘리지 않는 방식이었습니다. 오늘 보기에는 궤변이지만, 당대의 사고 안에서는 실제로 작동하던 구분이었습니다.

누가 이 법을 만들었나

이단을 불태우라는 법을 먼저 만든 것은 교회가 아니라 황제였습니다

1184 · 베로나 칙령 교황과 황제가 함께 이단자를 세속 권력에 넘기다 1224 · 프리드리히 2세 황제가 만든 제국법 이단자 화형을 법으로 정하다 1231 · 그레고리오 9세 교회법이 이를 받아들이다 7년 뒤 화형을 법으로 만든 쪽은 세속 군주가 먼저였습니다
교회가 이 방식을 발명한 것이 아닙니다. 뿌리는 이단을 국가 범죄로 다룬 로마법에 있었고, 중세에 그것을 되살려 명문화한 것은 황제의 제국법이었습니다. 교회법은 7년 뒤에 그것을 받아들였습니다. 책임을 덜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것이 사회 전체의 법질서였다는 이야기입니다.

가톨릭만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한 사람이 가톨릭과 개신교 양쪽에서 동시에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가톨릭 종교재판소 1553 · 궐석 화형 선고 칼뱅의 제네바 1553 · 실제로 화형 집행 미카엘 세르베투스 삼위일체를 부정한 의사 양쪽 모두 같은 법을 쓰고 있었습니다
세르베투스는 도망친 곳에서 도리어 처형되었습니다. 재세례파는 가톨릭 · 루터파 · 칼뱅파 모두에게 쫓겼고, 1529년 제국의회는 가톨릭과 루터파가 함께 그들의 사형을 결의했습니다. 잉글랜드에서는 메리 1세가 개신교도를, 엘리자베스 1세가 가톨릭 사제를 처형했습니다. 이것은 한 교회의 문제가 아니라 한 시대의 문제였습니다.

실제 숫자

종교재판이 곧 화형이었던 것도 아닙니다

100건 가운데 약 2건 스페인 종교재판소 재판 기록 44,674건 분석 · 1540–1700년 사형 선고 재판 1건 사형 선고 1건
덴마크 사학자 구스타프 헤닝센이 스페인 종교재판소의 재판 기록 44,674건을 분석한 결과, 사형 판결은 약 1.9%였습니다. 대중적으로 알려진 수십만 명이라는 숫자와는 거리가 멉니다. 브루노를 재판한 로마 종교재판소는 규모가 더 작았습니다.

더 뜻밖의 사실도 있습니다. 현대 연구자들은 종교재판소의 절차가 당대의 세속 법정보다 오히려 정비되어 있었다고 봅니다. 변호인을 붙일 수 있었고, 고문의 횟수와 시간에 제한이 있었으며, 상소가 가능했습니다. 세속 법정으로 갈 바에는 종교재판소로 가려고 일부러 신성모독을 저질렀다는 기록까지 남아 있습니다.

그렇다고 아무도 몰랐던 것은 아닙니다

그 시대에도 이건 아니라고 말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다들 그랬다"가 완전히 맞는 말은 아닙니다. 소수였지만 분명히 있었고, 그들은 목숨을 걸고 말해야 했습니다. 다르게 볼 수 있는 눈이 그 시대에도 있었다는 뜻입니다.

1554

“사람을 죽이는 것은 교리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세르베투스가 불탄 이듬해, 칼뱅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쓴 글입니다. 그는 이 글을 살아서 출판하지 못했습니다.

세바스티안 카스텔리오 · 『칼뱅의 소책자에 반대하여』

1588

“자기 추측 때문에 사람을 산 채로 굽는 것은, 그 추측을 너무 비싸게 사는 일이다”

마녀 재판을 두고 한 말입니다. 확신이 사람의 목숨보다 비쌀 수 있느냐는 물음이었습니다.

미셸 드 몽테뉴 · 『수상록』 「절름발이에 관하여」

1631

“내가 형장까지 따라간 사람들 가운데, 죄가 있다고 확신할 수 있었던 이는 없었다”

마녀 재판에서 사형수를 돌보던 예수회 사제가 고문 절차를 안에서 고발했습니다. 이름을 밝힐 수 없어 익명으로 냈습니다.

프리드리히 슈페 신부 · 『범죄에 대한 경고』

그러므로 정확한 표현은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다"가 아니라 "압도적 다수가 당연하게 여겼고, 반대하는 사람은 위험을 무릅써야 했다"입니다. 이 차이가 뒤에 가서 중요해집니다.

생각이 바뀌기까지

당연하던 것이 끔찍한 것이 되는 데 400년이 걸렸습니다

당연하게 여기던 때 생각이 바뀌어 간 시간 1600 1631 1764 1786 1868 1965 2018 브루노 화형 슈페가 고문을 안에서 고발하다 『범죄와 형벌』 고문과 사형에 반대 토스카나 유럽 최초 사형 폐지 잉글랜드 공개 처형 폐지 「인간 존엄성」 종교 자유는 권리다 교리서 2267항 개정 사형은 허용될 수 없다
브루노가 죽고 164년 뒤에야 베카리아가 고문과 사형에 정면으로 반대하는 책을 냈고, 유럽에서 처음으로 사형을 폐지한 나라가 나온 것은 그로부터 22년 뒤였습니다. 잉글랜드가 공개 처형을 그만둔 것은 1868년, 불과 150여 년 전입니다.

그래서 결론은

"그때는 다 그랬다"는 설명은 되지만 변명은 되지 않습니다

그 시대의 잣대 야만스러운 일 평범한 일 1600년의 화형 복음의 잣대 어긋나는 일 맞는 일 1600년의 화형 같은 행위, 다른 잣대
그리스도인은 시대의 평균으로 재어지지 않습니다. 1600년 로마 시민으로서는 평범했으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는 평범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교회가 "그때는 다 그랬다"로 이야기를 끝내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교회의 목자들이 자기 법정에서 로마법의 규정을 본받아 그러한 관행을 받아들인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2298항 — 요지 옮김. 교회 자신이 쓴 표현은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가 아니라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양쪽으로 자주 어긋나는 이야기들

사실은 이렇습니다

종교재판이 수십만 명을 불태웠다

스페인 종교재판소 기록 44,674건 분석에서 사형 판결은 약 1.9%입니다. 절대 수도 수천 명대로 추정됩니다. 적어서 괜찮다는 뜻이 아니라, 알려진 숫자가 사실과 크게 다르다는 뜻입니다.

가톨릭 교회만 사람을 불태웠다

칼뱅의 제네바, 루터파 영방, 잉글랜드 국교회가 모두 같은 법을 썼습니다. 마녀 재판은 오히려 개신교 지역에서 더 격렬했습니다.

종교재판소가 세속 법정보다 잔인했다

현대 연구의 결론은 반대에 가깝습니다. 변호인, 고문의 제한, 상소 절차가 있었습니다. 당대 기준으로 상대적으로 정비된 법정이었습니다.

그때는 다 그랬으니 교회 잘못이 아니다

교회 자신이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교리서는 "유감스러운 일"이라 하고, 공의회는 "복음 정신에 어긋나는 행동 방식"이었다고 합니다. 맥락은 설명이지 면죄가 아닙니다.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다

소수였지만 있었습니다. 카스텔리오, 몽테뉴, 그리고 예수회 사제 슈페. 그들이 익명으로 써야 했다는 사실이, 다르게 볼 눈이 그 시대에도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오늘

교회는 이 문제에서 계속 움직여 왔습니다

1965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종교의 자유를 인간 존엄에 근거한 권리로 선언했습니다. 2018년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리서 2267항을 고쳐, 사형이 "복음에 어긋나며 인간의 불가침한 존엄에 대한 공격"이므로 허용될 수 없다고 명시했습니다. 400년 전에는 형벌의 한 방식이었던 것이, 이제는 원칙적으로 배제됩니다.

오늘날 우리는 아무리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라도 그 인격의 존엄을 잃지 않는다는 것을 더 분명히 깨닫고 있습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2267항, 2018년 개정 — 요지 옮김

여기서 한 가지 물음이 남습니다. 1600년의 사람들은 자기들이 무언가 끔찍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것 가운데, 400년 뒤 사람들이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일은 무엇일까요. 이 물음을 던질 줄 아는 것이, 브루노의 불이 우리에게 남긴 몫입니다.

더 확인하실 곳

  • 『가톨릭 교회 교리서』 2298항(고문과 잔인한 형벌) · 2267항(2018년 개정, 사형)
  •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종교 자유 선언 「인간 존엄성」 1항 · 12항
  • 프란치스코 교황, 회칙 「모든 형제들」 263–270항 — 사형 폐지 촉구
  • 구스타프 헤닝센, 스페인 종교재판소 재판 기록(Relaciones de causas) 44,674건 통계 분석, 1540–1700
  • 존 테데스키, 『신앙의 재판소 — 로마 종교재판소 연구』 — 절차와 세속 법정의 비교
  • 세바스티안 카스텔리오, 『이단자에 관하여』(1554) · 『칼뱅의 소책자에 반대하여』
  • 프리드리히 슈페, 『범죄에 대한 경고』(Cautio Criminalis), 1631 — 익명 출판
  • 미셸 드 몽테뉴, 『수상록』 3권 11장 「절름발이에 관하여」, 1588
  • 체사레 베카리아, 『범죄와 형벌』, 1764
  • 1184년 베로나 칙령 · 1224년 프리드리히 2세 제국법 · 1231년 그레고리오 9세 교회법

이 페이지의 인용문은 이해를 돕기 위한 한국어 요지 옮김이며, 공인된 번역본이 아닙니다. 처형 통계는 연구자와 대상 시기에 따라 편차가 있으며, 여기 실은 수치는 널리 인용되는 추계입니다. 강의나 문서에 쓰실 때는 원문과 원자료를 대조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