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교회의 공식 입장
교회는 갈릴레오에게
무엇이라 답했는가
1633년 로마의 한 법정. 400년이 지난 지금, 교회 자신은 그 재판을 어떻게 이야기할까요. 그림 몇 장으로 천천히 따라가 봅니다.
1610년 겨울
망원경이 아무도 못 보던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가 본 것은 더 있었습니다. 달의 울퉁불퉁한 표면, 그리고 금성이 달처럼 차고 기우는 모습. 금성의 위상은 금성이 태양을 돈다는 뜻이었습니다.
쟁점
다툼은 단 하나였습니다. 한가운데에 무엇이 있는가
진짜 쟁점
싸움은 하늘에서 벌어진 게 아니라, 성경을 어떻게 읽느냐에서 벌어졌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시려는 것은 어떻게 하늘에 가는지이지, 하늘이 어떻게 가는지가 아니다.
체사레 바로니오 추기경의 말. 갈릴레오가 「크리스티나 대공비에게 보내는 편지」(1615)에서 인용했고, 1992년 요한 바오로 2세의 연설에서도 되풀이되었습니다.
1616년
그래도 왜 교회는 제동을 걸었을까요
이유는 하나가 아니라 세 가지가 겹쳐 있었습니다. 하나는 과학의 문제, 하나는 시대의 문제, 하나는 사람의 문제였습니다.
시대의 문제
성경 해석의 빗장이 잠겨 있던 시기
종교개혁 직후였습니다.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 교회는 "교부들의 일치된 견해에 어긋나는 사사로운 성경 해석"을 강하게 경계하고 있었습니다. 하필 갈릴레오가 신학자처럼 성경 해석을 논한 것이 화약고를 건드린 셈이 되었습니다.
사람의 문제
후원자를 조롱한 것처럼 읽힌 책
교황 우르바노 8세는 원래 갈릴레오의 후원자였습니다. 그런데 1632년 『두 큰 세계 체계에 관한 대화』에서 교황이 아끼던 논거가 Simplicio—"단순한 사람"이라는 이름의 등장인물 입에서 나옵니다. 학문의 문제가 개인적 모욕의 문제로 번졌습니다.
실제로 일어난 일
제한은 걸렸고, 그다음 교회는 그것을 하나씩 풀었습니다
자주 오해되는 지점
교회가 "지동설은 이단"이라고 무류하게 선언한 적은 없습니다
만일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참된 증명이 있다면, 그와 반대로 보이는 성경 구절을 해석할 때 우리는 매우 신중해야 하며, 증명된 것을 거짓이라 말하기보다 우리가 그 구절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로베르토 벨라르미노 추기경이 포스카리니 신부에게 보낸 편지, 1615년 4월 12일 — 요지 옮김. 갈릴레오에게 경고를 전한 바로 그 인물이, 원칙 자체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1979 – 1992
교회는 조사를 열었고, 잘못을 인정했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1979년 사건의 재조사를 요청했고, 1981년 교황청 위원회가 꾸려졌습니다. 11년 뒤 교황은 그 결과를 받아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시 신학자들의 오류는, 세계의 물리적 구조에 관한 우리의 이해가 어떤 식으로든 성경의 문자적 뜻에 의해 정해진다고 생각한 데 있었습니다.
진지한 신앙인이었던 갈릴레오는 바로 이 점에서, 그를 반대한 신학자들보다 더 깊이 보았습니다.
갈릴레오 사건에서 비롯된 저 비극적인 서로의 오해는 이제 과거의 일에 속합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청 과학원 연설, 1992년 10월 31일 — 한국어 요지 옮김
교황은 이 사건이 "신앙과 과학은 원래 싸우는 사이"라는 하나의 신화를 낳았다고 지적했습니다. 그 신화를 만든 것은 갈릴레오도, 신앙도 아니고, 서로의 영역을 착각한 오해였다는 것입니다.
널리 퍼진 이야기들
사실은 이렇습니다
갈릴레오는 화형당했다
조르다노 브루노와 뒤섞인 이야기입니다. 갈릴레오는 1642년 자택에서 성사를 받고 선종했습니다.
고문을 당했다
심문 절차상 고문이 언급되기는 했으나 실행되지 않았습니다. 재판 기간에도 그는 대사 관저와 성무성성 숙소에 머물렀습니다.
지하 감옥에 갇혔다
시에나 대주교의 저택에 머물다 아르체트리의 자기 별장에서 여생을 보냈습니다. 그곳에서 역학에 관한 최고의 저작을 완성했습니다.
교황이 무류하게 지동설을 단죄했다
성무성성의 징계적 결정이었고, 신앙의 교의로 정의된 적이 없습니다. 이 차이가 뒤에 정정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교회는 과학 자체를 반대했다
코페르니쿠스는 성당 참사원이었고, 로마 학원의 예수회 천문학자들은 1611년 갈릴레오의 관측을 직접 확인하고 그를 환대했습니다. 그레고리력도 교회가 만든 것입니다.
교회는 끝내 사과하지 않았다
1992년 요한 바오로 2세가 공식적으로 잘못을 인정했고, 2000년 대희년의 참회 예식에서도 진리에 대한 폭력을 사죄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교회의 입장은 한 문장으로 요약됩니다
올바른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모든 학문 분야의 연구는 결코 신앙과 참으로 대립될 수 없다. 세속 사물과 신앙의 실재는 같은 하느님에게서 나오기 때문이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159항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기쁨과 희망」 36항 인용)
그래서 갈릴레오 사건은 교회에게 부끄러운 기억인 동시에 배운 교훈입니다. 성경은 물리학 교과서가 아니며, 성경을 읽을 때는 저자가 무엇을 어떤 방식으로 말하려 했는지 살펴야 한다는 원칙. 그 원칙은 1943년 「성령의 감도」와 1965년 「하느님의 말씀」에서 교회의 공식 성경 해석 지침이 되었습니다.
더 확인하실 곳
-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청 과학원 연설, 1979년 11월 10일 — 갈릴레오 사건 재조사 요청
- 갈릴레오 연구를 위한 교황청 위원회, 1981–1992
-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청 과학원 연설, 1992년 10월 31일 — 위원회 결과 수용
- 『가톨릭 교회 교리서』 159항, 283–284항
-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사목 헌장 「기쁨과 희망」 36항 — 세속 사물의 정당한 자율성
- 비오 12세, 회칙 「성령의 감도」(1943) /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계시 헌장 「하느님의 말씀」(1965) 11–13항
- 갈릴레오 갈릴레이, 「크리스티나 대공비에게 보내는 편지」, 1615
- 로베르토 벨라르미노 추기경이 포스카리니 신부에게 보낸 편지, 1615년 4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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