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교회의 공식 입장

브루노는
왜 불탔는가

1600년 2월 17일, 로마 캄포 데 피오리. 이 사람은 400년 동안 "과학의 첫 순교자"로 불려 왔습니다. 남아 있는 기록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그가 상상한 하늘

중심도 없고 끝도 없는 우주. 400년 전에 이렇게 말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1584 · DE L'INFINITO 우리 해도 그중 하나일 뿐
브루노가 그린 하늘입니다. 별 하나하나가 우리 해와 같고, 저마다 세계를 거느리며, 어디에도 한가운데가 없습니다. 놀랍도록 현대적인 그림이지요. 그런데 그는 이것을 망원경으로 본 것이 아니었습니다.
기록 있음 — 그의 저서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1548 – 1592

그는 천문학자가 아니라,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한 도미니코회 사제였습니다

가톨릭 교회 도미니코회 사제 1576 이단 혐의 · 수도복을 벗고 도주 제네바 칼뱅파 1579 파문 · 추방 헬름슈테트 루터파 1589 파문
브루노는 세 교파 모두에서 쫓겨났습니다. 가톨릭에서만이 아니라 칼뱅파와 루터파도 그를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가 건드린 것이 어느 한 교회의 규율이 아니라, 그리스도교 신경(信經)의 핵심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한 일

기억술 교사이자 철학자

유럽을 떠돌며 기억술과 형이상학을 강의했습니다. 앙리 3세의 후원을 받았고 옥스퍼드에서도 강의를 시도했습니다. 망원경은 쓴 적이 없고, 행성의 위치를 계산하는 수학적 천문학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하지 않은 일

관측도, 계산도, 증명도

무한 우주는 관측의 결론이 아니라 논증의 결론이었습니다. 무한한 하느님은 무한한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는 것. 아름다운 직관이었지만, 이것은 물리학이 아니라 형이상학이었습니다.

그는 코페르니쿠스보다 훨씬 멀리 갔습니다

문제는 지구가 도느냐가 아니라, 하늘에 껍질이 있느냐였습니다

1500년경 지구가 한가운데 하늘은 껍질로 닫혀 있다 1543 · 코페르니쿠스 해가 한가운데 그래도 껍질은 그대로 있다 1584 · 브루노 한가운데가 없다 껍질도 없고 끝도 없다
코페르니쿠스도 우주에 바깥 껍질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브루노는 그 껍질을 깨뜨렸습니다. 세계가 무수히 많다면, 그 세계들에도 사람이 있다면, 그리스도의 강생과 구속은 어떻게 되는가 — 이것이 신학자들을 긴장시킨 대목이었습니다.

1600년 · 무엇으로 정죄되었나

죄목 목록에 "지구가 돈다"는 항목은 없습니다

기록 소실 — 판결문 원본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학자 재구성 — 1942년 발견된 요약본을 바탕으로
신앙 교리에 관한 항목 우주론에 관한 항목 1 삼위일체와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함 2 성체 안에 그리스도께서 계심을 부정함 3 성모 마리아의 동정성을 부정함 4 영혼이 몸에서 몸으로 옮겨 다닌다고 주장함 5 개별 영혼은 없고 하나의 세계 영혼만 있다고 주장함 6 세계가 여럿이며 영원하다고 주장함 7 마술과 점술을 행함 8 그리스도를 마술사로 말하는 등 불경한 언사 지구가 태양의 둘레를 돈다는 주장 목록에 없음
여덟 항목 가운데 일곱이 신앙 교리에 관한 것입니다. 우주론 항목은 여섯 번째 하나뿐인데, 그것도 "지구가 돈다"가 아니라 "세계가 여럿이며 영원하다"입니다. 세계가 영원하다는 주장은 창조 교리와 정면으로 부딪칩니다.

다만 정직하게 덧붙여야 할 것이 있습니다. 판결문이 없으므로 "우주론은 전혀 관계없었다"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무한한 세계는 창조·강생·구속과 얽혀 있었고, 재판관들이 그 얽힘을 어디까지 문제 삼았는지는 사료가 말해 주지 않습니다.

자주 뒤섞이는 두 사람

브루노와 갈릴레오는 같은 사건이 아닙니다

로마 종교재판소 브루노 · 1600 죄목 — 삼위일체 · 강생 · 성체 부정 신분 — 도주한 수도 사제 철회를 끝까지 거부 화형 갈릴레오 · 1633 죄목 — 지동설 옹호 신분 — 평신도 수학자 철회함 가택 연금 같은 법정, 전혀 다른 사건
죄목도, 신분도, 태도도, 결과도 다릅니다. 두 사건을 하나로 묶으면 양쪽 다 이해할 수 없게 됩니다. 갈릴레오 재판에서 신학 명제는 문제되지 않았고, 브루노 재판에서 망원경은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사건, 그리고 그 이후

"과학의 순교자"라는 이야기는 그가 죽고 289년 뒤에 만들어졌습니다

그의 생애와 재판 그를 기억하는 방식 1548 1576 1592 1600 1889 1942 2000 놀라에서 태어남 이단 혐의를 받고 수도복을 벗다 베네치아에서 고발되다 캄포 데 피오리에서 화형 같은 자리에 동상 순교자 이야기의 시작 재판 요약본이 발견되어 죄목의 윤곽이 드러나다 교황이 그 방법의 잘못을 인정하다
1889년 캄포 데 피오리에 세워진 동상은 이탈리아 통일 이후 반교권주의 진영이 주도한 사업이었습니다. 그 무렵 나온 두 권의 책 — 드레이퍼의 『종교와 과학의 갈등사』(1874)와 화이트의 『과학과 신학의 전쟁사』(1896) — 이 "신앙 대 과학"이라는 틀을 굳혔고, 브루노는 그 틀의 표지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무엇이라 말하는가

교회의 답은 세 겹입니다. 하나는 유지하고, 하나는 사죄하고, 하나는 바로잡습니다

브루노의 사상은 그리스도교 신앙과 양립할 수 없다 이 판단은 그대로 믿음을 이유로 사람을 불태워 죽인 것 복음에 어긋난다 ? 지동설 때문에 죽었다는 이야기 사료가 받쳐 주지 않는다
갈릴레오 사건과 달리, 교회는 브루노를 복권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사상에 대한 판단은 철회되지 않았습니다. 철회된 것은 그 판단을 집행한 방법입니다. 이 구분이 교회 입장을 이해하는 열쇠입니다.
지난날에는 합법적인 정권들도 공공 질서를 지키려고 잔인한 관행을 흔히 사용하였다. 교회의 목자들이 자기 법정에서 로마법의 규정을 본받아 그러한 관행을 받아들인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오늘날에는 이러한 잔인한 관행이 공공 질서에 필요하지도 않고 인간의 정당한 권리에 부합하지도 않는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2298항 — 요지 옮김

그러나 하느님 백성의 여정 안에서 때때로 복음 정신에 덜 부합하는, 아니 오히려 어긋나기까지 하는 행동 방식이 있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종교 자유 선언 「인간 존엄성」 12항

2000년 대희년, 요한 바오로 2세는 "진리를 섬긴다면서 불관용과 폭력의 방법에 의지한" 죄에 대해 용서를 청했습니다. 브루노의 이름이 불리지는 않았지만, 이 참회가 겨냥한 것 안에 그의 죽음이 있습니다. 같은 해 브루노 서거 400주년 학술대회에 보낸 교황청의 서한도 그 죽음을 슬픈 사건으로 표현했습니다.

널리 퍼진 이야기들

사실은 이렇습니다

지동설을 주장해서 화형당했다

남아 있는 죄목 목록은 대부분 신학 항목입니다. 지동설은 명시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판결문이 소실되어 "우주론이 전혀 무관했다"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브루노는 과학자였다

망원경도 계산도 쓰지 않은 철학자이자 기억술 교사였습니다. 그의 무한 우주는 관측이 아니라 형이상학적 논증의 결론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놀랍도록 앞선 직관이었다는 사실은 남습니다.

교회가 직접 그를 불태웠다

종교재판소가 유죄를 선고하고 세속 권력에 인도했으며, 집행은 로마 시 당국이 했습니다. 이 절차상 구분이 책임을 덜어 주지는 않습니다. 인도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두가 알고 있었습니다.

교회가 브루노를 복권했다

아닙니다. 2000년에 표명된 것은 처형이라는 방법에 대한 유감이지, 그의 사상에 대한 판단의 철회가 아닙니다. 갈릴레오의 경우와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입니다.

갈릴레오 사건과 같은 일이다

죄목도 신분도 태도도 결과도 다릅니다. 두 사건을 겹쳐 놓으면 양쪽 다 설명할 수 없게 됩니다.

그때부터 그는 과학의 순교자로 기억되었다

그 이야기는 1889년 동상 건립과 19세기 "신앙 대 과학" 서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사후 289년 뒤의 일입니다.

남는 물음

틀린 사람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브루노 사건이 오늘 교회에 남긴 물음은 "그가 옳았는가"가 아닙니다. 교회는 그가 틀렸다고 지금도 판단합니다. 물음은 틀린 사람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입니다. 1965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그 답을 문서로 못박았습니다.

진리는 진리 자체의 힘으로 사람의 마음에 부드럽게 그리고 동시에 힘차게 스며들면서 퍼져 나가는 것이므로, 인간은 누구도 신앙을 강요받아서는 안 됩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종교 자유 선언 「인간 존엄성」 1항 · 10항 — 요지 옮김

진리가 스스로의 힘으로 선다면, 진리를 위해 장작이 필요할 이유가 없습니다. 캄포 데 피오리의 불은 브루노가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했고, 교회가 옳다는 것도 증명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이 사건이 남긴 교훈입니다.

더 확인하실 곳

  • 안젤로 메르카티 추기경 편, 『조르다노 브루노 재판 요약본』(Il sommario del processo di Giordano Bruno), 바티칸 1942 — 1940년 바티칸 문서고에서 발견된 로마 재판 요약
  • 베네치아 종교재판소 심문 기록, 1592 — 19세기에 공개
  • 『가톨릭 교회 교리서』 2298항
  •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종교 자유 선언 「인간 존엄성」 1항, 10항, 12항
  • 요한 바오로 2세, 용서를 청하는 전례, 2000년 3월 12일
  • 교황청 국무원장 서한, 브루노 서거 400주년 학술대회, 2000년 2월
  • 국제신학위원회, 「기억과 화해: 교회와 과거의 잘못들」, 1999 — 교황청 자문 기구의 연구 문헌이며 교도권 문헌이 아닙니다
  • 조르다노 브루노, 『무한자, 우주와 세계들에 관하여』, 1584 · 『재의 수요일 만찬』, 1584

이 페이지의 인용문은 이해를 돕기 위한 한국어 요지 옮김이며, 공인된 번역본이 아닙니다. 여덟 개 죄목 목록은 재판 요약본을 바탕으로 학자들이 재구성한 것으로 세부 항목에는 이견이 있습니다. 강의나 문서에 쓰실 때는 위 원문을 대조해 주십시오.